지해범 논설위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8일 다롄(大連)항에 정박 중인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함에 올라 해군 의장대를 사열했다. 군복 차림의 시 주석은 "이른 시일 안에 전투력을 갖춰 강군(强軍) 건설의 목표를 관철하고, 국가 주권과 안전, 발전 이익 보호에 공헌하라"고 명령했다. 시 주석의 행보가 지난달 일본이 진수한 사실상 항공모함 '이즈모함'을 의식한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즈모'는 1930년대 일제가 중국을 침략할 때 동원했던 함정 이름을 따온 것이어서 중국인들을 더욱 화나게 했다.

중국과 일본의 군비 경쟁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흐름에 올라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중국은 랴오닝함에 이어 국산 항모 건조를 시작했으며 스텔스기와 핵잠수함도 늘리고 있다. 중국은 19세기 말과 같은 치욕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군비 증강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일본 아베 정부는 국방비를 증액해 잠수함 숫자를 늘리고 해병대 창설도 서두르고 있다.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 이래 120년을 이어온 '일본 우위시대'가 '중국 우위시대'로 뒤집히는 것에 초조한 기색이 뚜렷하다.

한국이 주목해야 할 것은 두 나라가 군비 증강 과정에서 한반도라는 밥상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아베 정부는 '한반도 유사시'에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다.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바꾸고 해외에서 미군과 함께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려고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면 '미군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개입해 일본의 국익을 관철하겠다는 의도다. 아베의 시도가 성공하면, 일본은 1945년 패전 후 70년도 안 돼 다시 한반도에 파병할 가능성을 열어놓게 된다.

일본만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중국도 한반도에 대한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2010년 한·미(韓美)가 북한 천안함 공격에 대응해 서해에서 연합군사훈련을 준비할 때, 중국 군사과학원 뤄웬(羅援) 소장은 "집 앞에서 소란 피우지 말라"고 했다. 서해를 자기 나라 '내해(內海)'인 양한 발언이다. 2011년 말 김정일 사망 직후 장즈쥔(張志軍) 외교부 부부장은 한국 대사를 불러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중국의 중요한 전략적 이익"이라며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올 4월에는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중국 '문 앞'에서 말썽 피우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말해 '문 앞'이 한반도 전체를 가리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중국은 북한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전략적 자산'으로 보는 듯하다.

21세기 한반도에 19세기 말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인구 5000만에 국내총생산(GDP) 세계 15위의 한국을 가운데 두고 이웃 두 강대국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이 기막힌 현실 앞에서 정치권은 국가 안보를 위해 머리를 맞대도 시원찮을 판에 정치 싸움으로 날을 지새운다. 친북 좌파들은 자유민주체제를 파괴해 김정은을 신처럼 떠받드는 수령독재체제로 바꾸겠다며 국회에서까지 활개치고 있다.

한반도의 위기가 늘 내분과 방심, 안보 소홀에서 비롯됐다는 역사 교훈을 잊는다면, 우리 밥상에는 또 낯선 숟가락이 올라올 것이다.




/조선일보 지해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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