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평화 공세와 유화 제스추어, 내부자원 고갈 따른 위기 타개책
核포기 등 '전략상 변화'와 무관…
사과도 재발방지 약속도 없이 이산가족·개성공단 회담 중에 금강산 관광 再開는 시기상조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북한의 파상적인 '평화' 공세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북한은 개성공단 정상화 요구에 호응해 온 데 이어, 적십자 실무접촉을 통해 3년 만에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열기로 했다. 또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8월 말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만나 6자회담 재개문제를 협의했고, 불발에 그치긴 했지만 로버트 킹 미국 북한인권특사를 초청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8월 25일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선군절' 기념보고대회에서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목표로 세운 우리에게 있어 평화는 더없이 귀중하다"면서,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고 언급하는 등 이례적으로 '평화 애호' 이미지를 과시하였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만 보면 그간의 남북대결과 군사적 긴장은 완전히 가신 듯 보인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대남 자세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난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최근의 변화 양상은 총체적 위기국면, 곧 혁명의 간조기(干潮期) 상황을 타개하려는 의도적인 유화 제스처로 읽힌다. 금년 상반기에 북한이 실시한 대남 무력시위, 4·15 '태양절' 및 정전협정 60주년 행사 등으로 내부자원이 거의 고갈됐다. 이와 관련, 북한 당국이 돈줄(달러)이 말라 고위층의 주머니를 압박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개성공단 폐쇄는 5만3천명의 북한 근로자와 그 가족을 포함, 총 20만여 명의 생계를 위협하는 자충수가 됐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경제제재 결의 2094호 채택과 중국의 대북 압박 가세 등 한반도 정세가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에 북한은 부득불 '전술상의 후퇴'를 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선택이 작금의 남북관계에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북한의 변화는 핵무장 포기 등 본질적인 '전략상의 변화'와는 거리가 멀다. '경제·핵 병진노선'은 지금 '체제 고수의 생명선',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노선'으로 제시되고 있다.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을 명문화하고 '핵무장 공고화 법령'을 채택한 데서 보듯이 단지 언술(言述)로써 그 같은 노선을 포기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

북한 당국자들이 '평화'를 강조한 그 순간에도 북한은 언제라도 핵실험을 할 수 있도록 풍계리 핵실험장을 유지·관리하는 한편, 영변 핵시설 재가동 준비 등 핵 능력 제고를 은밀히 추진하였다. 장거리 미사일 개발도 지속하고 있다. 나아가 서해 5도와 수도권을 겨냥한 다연장포 증강 배치, 사이버 공간에서의 '촛불투쟁' 선동 등 대남 군사전략과 남한체제 전복노선(흑색선전과 보혁갈등 선동, 통일전선전술 등)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평화와 모순된 활동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북한의 '남북화해 연출'과 '미소외교'는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보다는 국제사회의 제재 모면, 한국의 대북정책 전환, 경제 실리 획득을 겨냥한 '일시적인 유화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수차례 '도발→협상→보상'이란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원칙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할 것임을 천명했다. 현재의 남북관계는 '도발에 이은 협상과 합의 실천'의 국면에 있다. 기존 방식(무원칙한 보상)을 답습하지 않고 상식과 국제규범이 통하는 새로운 남북관계를 만들려면, 현 상황을 낙관적으로만 바라봐선 안 된다. 냉철한 전략적 사고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인도적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후속 회담은 진행해야 하지만, 북한의 공식 사과와 명확한 재발방지 보장, 일방적 자산처분의 원상회복이 없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는 시기상조라 하겠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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