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된 딕 체니(59) 전 국방장관은 ‘2인자학’을 체득하고 있는 입지전적인 정치인이다. 24일(미국시각) 미국 공화, 민주 양당 지도자들은 초당적으로 체니에 대해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체니는 미국의 중서부 시골인 네브래스카주의 링컨에서 가난한 농업담당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예일대학의 장학생으로 선발됐으나 동부의 텃세를 견디지 못하고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온다. 와이오밍대에서 정치학 학사·석사를 마친 체니는 박사학위 과정 중인 1968년 워싱턴DC로 옮겨 의회연구원을 시작으로 ‘워싱턴 정치인’으로 빠르게 변신했다.

71년 이후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백악관 보좌관을 거쳐 75년에는 34세라는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다. 체니는 하원의원 시절 원내총무를 바라보는 유리한 위치까지 갔으나 89년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지명으로 국방장관으로 입각한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1인자’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 동료의원들의 평가.

체니의 행정부 근무 중 최대 하이라이트는 91년 걸프전 당시 많은 동맹국들의 지원 속에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한 것. 그는 개인적으로 군경험은 전무했지만, 콜린 파월 합참의장 등과 호흡을 맞춰 89년부터 93년까지 미국의 안보정책을 주도했다.

체니는 정치적으로 ‘강한 보수주의자’. 체니는 과거 20여년간 공직생활을 통해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구 소련과 북한 등의 핵확산에 대해선 강경노선을 펴왔으며 우방국의 안보를 공산주의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전통적인 공화당 노선을 충실히 지켜왔다.

체니는 와이오밍주에서 78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10여년간의 의정활동에서 연방정부가 예산으로 낙태를 지원하는 데 반대했고 여성동등법안과 교육부 신설에 반대했다. 특히 단 3명의 의원과 함께 탐지기에 체크되지 않는 플라스틱 총기규제에도 반대하는 등 어떠한 총기규제에도 거부감을 표시했다.

체니는 또 군사비의 증액에는 반대하지만 북한 등이 핵부품을 획득하는 데 감시를 강화해야한다는 생각이다. 또 니카라과 반군 지원에서 보듯 공산주의의 확산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체니는 그러나 이런 강한 생각에 비해 개인적인 스타일은 매우 부드럽고 온화한 편이다. 이 때문에 그는 ‘적(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체니의 부인 린은 잡지 ‘워싱토니언’의 편집장을 지낸 작가출신으로 여성계 명사이다.

/워싱턴=강효상기자 hsk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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