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장·승마장 新設공사 독려하고 유희장 관리 미비엔 역정 내기도
주민은 먹고살기 바빠 허덕대는데 놀거리 챙기며 '인민 사랑' 자화자찬
"수천만달러 外貨 번다" 큰소리도… 영도자 홀린 신기루 언제나 걷힐까



김창균 정치 담당 에디터 겸 부국장


얼마 전까지 북한 뉴스 하면 핵이나 미사일 같은 국방(國防)색이었다. 지난 주말 전해진 북한발(發) 뉴스 세 건은 때깔이 달랐다.

#1. 최룡해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24일 선군절 기념행사에서 "인민은 전쟁보다 평화를 원한다"면서 "마식령 스키장, 문수 물놀이장 같은 주요 대상 건설을 최상의 수준으로 다그쳐 끝내야 한다"고 했다.

#2. 북한스키협회 대변인은 24일 스위스·이탈리아 정부가 스키장 리프트 설비의 대북(對北) 수출을 금지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유엔헌장에 대한 난폭한 유린"이라고 비난했다.

#3. 조선 국제여행사는 24일 북한 주재 각국 대사관 관계자 및 중국·영국·독일 여행사 대표들을 평양 양각도호텔에 초청해 관광특구 설명회를 개최했다.

김정은에 이어 군 서열 2위인 최룡해가 김정일의 선군(先軍) 통치를 기리는 행사에서 스키장, 물놀이장 얘기를 했다. 합참의장이 국군의 날 행사에서 스키 리조트, 물놀이 테마파크 타령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머지 뉴스 두 건도 우리로 치면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업무에 해당한다.

요즘 북한에서 나오는 뉴스는 십중팔구가 놀이 시설과 관련된 것들이다. 원산 마식령에선 스키장 건설이 한창이고, 압록강변엔 대형 수영장이 들어서고 있다. 원산시 해변엔 우주비행선, 회전그네 등 현대식 놀이 시설이 도입됐고 평양 문수 물놀이장도 전면 개축 공사를 벌이고 있다.

김정은이 올 들어 현지지도를 하다 크게 역정을 낸 것도 놀이 시설에서였다. 미림 승마 구락부 건설 현장에서는 "다른 나라 승마학교 자료를 많이 보내줬는데 전혀 참조하지 않았다"고 질책했고, 만경대 유희장에서는 놀이 시설 페인트칠이 벗겨졌고, 도로가 파손됐으며, 분수대 청소 상태가 마음에 안 든다고 조목조목 관리 소홀을 나무랐다.

지난 몇 달 새 김정은은 전국을 돌며 놀이 시설의 신설·확충 공사를 독려하는 한편 기존 시설 관리 상태도 감독하고 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김정은의 놀이 시설 챙기기를 '인민 사랑 앞세우기'라고 의미 부여를 했다.

김정은은 삶 전체가 놀이 문화였다. 어려서부터 미 NBA 농구에 열광했고, 스위스 유학 시절엔 스키를 즐겼다. 생모 고영희와 일본 도쿄 디즈니랜드에도 가봤다. 수퍼 마리오, 테트리스 같은 컴퓨터 게임도 잘했다고 한다. 10대 시절 김정은은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에게 "나는 매일 롤러 블레이드를 타고 농구도 하고 여름이면 제트스키도 타는데 밖의 인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북한 인민들이 자신만큼 놀거리를 즐기고 있을지 궁금해 했다는 것이다. 그때 그 마음 씀씀이가 오늘날 놀이 시설을 통한 인민 사랑으로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

북한 주민의 절대다수는 하루하루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허덕이는데, 김정은은 북한 주민이 제대로 놀고 즐기지 못할까 고민하고 있다. 그 엇나간 인민 사랑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김정은은 부가가치가 높은 오락 산업을 북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계산도 하고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선도 프로젝트로 삼고 있는 것이 마식령 스키장이다. 북한 당국은 마식령 스키장이 완공되면 하루 평균 이용객이 5000명쯤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키장을 250일 운영하면 연인원이 125만명에 이른다. 이들이 50달러씩 입장료를 내면 마식령 스키장 연간 수입이 6000만달러를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개성공단 9000만달러, 금강산 관광 4000만달러와 비교해 봐도 만만치 않은 수입이다.

이런 주판 셈처럼 황금알을 쑥쑥 낳아준다면 오죽 좋겠는가. 중국의 북한 여행 전문업체 '고려투어' 영문 홈페이지에는 북한 여행 때 주의사항이 적혀 있다. '사진을 함부로 찍으면 안 된다. 가이드 없이 홀로 돌아다니면 안 된다. 위대한 지도자 기념 장소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 규칙을 어기면 심각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으스스한 경고를 무릅쓰고 매년 125만명의 해외 관광객이 마식령 스키장을 방문해 줄 것인가. 북한 1인당 소득 한 달치와 맞먹는 50달러 입장료를 내고 스키장을 찾을 북한 주민은 또 몇 명이나 될까.

김정은은 북한 땅 곳곳을 파헤쳐 놀이 시설을 만들 태세다. 스키장, 승마장, 수영장, 테마 파크로 인민 사랑을 실천하면서 노다지도 캐겠다는 것이다. 젊은 영도자의 '꿩 먹고 알 먹고' 구상이 머잖아 신기루로 판명 날 텐데 그 후과(後果)는 또 누가 치르게 될 것인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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