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년 전인 1912년 함경북도 명천에서 고대인이 스키를 탔다는 흔적이 발견됐다. 나무판 발판에 구멍 4개를 뚫고 끈을 넣어 발을 묶었다. 가파른 눈비탈을 빠르게 미끄러지는 요즘 릴리엔펠트식(式) 알파인 스키랑 비슷했다. 구릉이 넓은 지대에선 스키 쪽이 좁고 길었다. 산세가 험하고 나무가 빽빽하면 스키 쪽이 넓고 짧았다. 그래야만 순간 회전이 쉬웠을 것이다. 우리 조상은 스키 폴을 하나만 썼다. 지금 것보다 길고 끝엔 쇠창살을 붙였다. 대개 사냥 겸용이었다.

▶1923년 조선총독부 철도국의 일본 직원이 스키 탈 곳을 고르다 외금강을 점찍었다. 당시 철도국엔 스키 본고장 나가노현 출신이 많았다. 외금강은 서울에서 너무 멀었다. 기차로 꼬박 이틀이 걸렸다. 강원도 삼방협도 후보지로 떠올랐다. 조금 가까웠지만 역시 교통이 불편했다. 그러다 1927년 원산 신풍리에도 스키장이 문을 열었다. 1930년대 조선에 스키 붐이 일었다. 신풍리·삼방협·외금강에선 스키 선수권 대회가 번갈아 열렸다.



▶북한은 1995년 제3회 동계 아시안게임을 양강도 삼지연에서 열려고 했다. 삼지연은 둘레가 4㎞ 가까운 자연 호수다. 백두산 기슭에 오르는 첫 동네이면서 바람이 순했다. 경사가 부드럽고 눈이 많이 내리는 비탈은 그대로 스키장이 됐다. 북한은 60년대부터 최신 리프트를 갖춰 국제 규모 스키장으로 키우려 했다. 슬로프도 54㎞나 됐다. 그러나 내부 사정 때문에 동계 아시안게임을 반납했다. 대회는 이듬해 중국 하얼빈에서 열렸다.

▶북한이 연말까지 문을 열겠다며 공사를 서두르는 마식령(馬息嶺) 스키장도 원산 신풍리에 있다. '말도 쉬어 넘는다'는 해발 768m 고개다. 북한은 스키장 리프트와 곤돌라를 스위스에서 들여오기로 85억원짜리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스위스 정부가 자국 기업의 수출 신청서에 퇴짜를 놨다. '유엔이 정한 대북 수출 제재 품목에 사치성 스포츠 시설이 추가됐다'는 이유였다. 스위스는 스키장 설비를 지배층이나 즐길 수 있는 사치품으로 봤다.

▶북한스키협회가 항의했다. "우리 인민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다." 협회는 "스키장 삭도(리프트) 설비에서 로켓이나 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외신은 "입장료 50달러짜리 스키장이 북한 주민에겐 '그림의 떡'"이라고 촌평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스위스 학교를 다닐 때 스키를 탔다고 한다. 그가 스위스에서 즐긴 스키가 왜 북한에선 사치품이 되는지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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