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정상화 비상대책위 유동호 위원장


“우리는 기업의 숫자도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10배가량이나 되고, 사업이 중단된 기간도 130일이 아니라 최장 2000일이 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아픔과 어려움에는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8월 20일 서울 종로구 계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유동호(48) 남북경협정상화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위원장은 인터뷰 말미에 목소리를 높였다. 개성공단 입주기업과 자신들의 처지를 비교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다. 옆에 앉아 있던 황창환(54) 비대위 홍보위원장도 “저쪽은 옥동자이고 우리는 서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비대위에는 127개 개성공단 입주기업을 제외한 1000여개 남북경협 기업들이 참가하고 있다. 개성공단이 130일간의 가동중단 끝에 정상화 합의에 이른 마당에 이들은 무슨 연유로 또 다른 남북경협 재개를 외치는 것일까.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개성공단 입주기업 외에도 1000개가 넘는 남북경협 기업이 있습니다. 제가 연락이 닿는 남북경협 기업이 1028개인데 실제로 대북 사업을 하는 업체는 1500개가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들 기업은 2008년 금강산서 터진 박왕자씨 피격 사망사건과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후 우리 정부가 모든 경협을 중단시킨 5·24조치로 인해 사업을 접고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1000개 넘는 기업이 북에서 들여오려던 물건이 묶이고 북한에 지은 공장은 가동이 중단됐습니다. 경협 기업들이 북에 짓다 만 공장과 시설도 많습니다. 우리가 자체 추산한 피해 규모가 3조~5조원에 이릅니다.”

유동호 위원장은 비대위 소속 기업들이 상대적 위기감과 초조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개성공단 사태가 130일 만에 정상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전체 남북경협의 물꼬가 트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5·24조치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청와대 측은 지난 8월 19일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못 박은 상태다.

◇ “5·24조치로 가장 큰 수혜 보는 것은 중국”

유동호 위원장은 답답해했다. “집단이기주의라 할지 모르지만 정부가 국가 이익을 고려해 고민해줬으면 합니다. 우리의 자본이 북한에 들어가 북한의 핵 무장이나 정권 유지에 쓰인다는 비판도 있지만 크게 보면 남북경협은 북한의 개방과 남북 간 소통과 화합에 기여했다고 봅니다. 5·24조치로 지금 가장 수혜를 보는 것은 중국입니다. 우리가 빠져나온 공간을 중국과 제3국가들이 더 크게 차지해버렸습니다.”

지난 5월 6일 비대위가 발족한 것도 이런 위기감의 발로라는 게 유 위원장의 설명이다. 별도의 협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성공단 입주기업들과 달리 일반적인 남북경협 기업들은 지금까지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었다. 농수산물협의회, 임가공협의회, 남북교역투자협의회 등 6~7개의 임의단체가 난립한 상태에서 저마다 ‘최고의 대북 네크워크’를 자랑하며 힘겨루기를 해왔다. 그러다 개성공단 사태로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이 와중에 개성공단입주기업협의회가 조직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을 지켜보며 ‘뭉쳐야 산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대위 소속 남북경협 기업들은 우리 정부에 의해 ‘내륙기업’으로 분류된다. 남북 접경지역에 위치한 개성공단 입주기업이 아니라 북한 내륙을 상대로 사업을 벌인다는 의미에서다. 이들 내륙기업은 다시 북한 내부에 투자한 내륙투자기업과 임가공·교역을 하는 단순 내륙기업으로 분류된다.

이 중 합법적인 승인을 받고 북한에 투자한 내륙투자기업이 40개 정도 된다. 임가공 업체의 경우 의류를 중심으로 한 평양 진출 기업이 160여개 있고, 평양 이외 지역에 50~60개가 있다. 평양 이외 지역은 가죽, 구두, 가구 등의 임가공이 주류를 이룬다. 합법 투자기업과 임가공 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은 대부분 단순 교역기업이다.

유동호 위원장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평균 투자액수가 기업당 50억~100억원 정도인데 비대위 소속 기업들 중에는 투자액이 200억원을 넘는 기업도 심심치 않게 있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평양에 대마 가공공장을 지은 ‘안동대마방직’ 김정태 회장과, 현대아산 출신인 ‘아천글로벌’ 김운규 회장, 북한 모래 수입 사업을 하는 ‘CS글로벌’ 이도윤 회장은 모두 대북 투자액이 200억원을 넘는다.

안동대마방직 김정태 회장의 경우 평양 공장을 거의 완공한 상태에서 박왕자씨 사건이 터져 공장은 돌려 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북한은 박왕자씨 피격사건 이후 우리의 강경 대응에 맞서 북한으로 들어오는 우리의 물자 통관 횟수를 줄이는 등 압박을 가했다.유 위원장 역시 대북 사업을 위해 그동안 쓴 150억원이 허공에 뜬 상태다. 지금까지 북한에 100번 정도 다녀왔다는 유 위원장은 본래 건설업을 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다 초창기 금강산 관광에 나섰다가 북한에 꽂혀 대북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과 달리 정부 도움 못 받아”

“2005년 현대의 금강산 사업 케이스와 비슷하게 50년 임차권, 50년 (재계약) 우선권 조건으로 평양 내륙공단 시범단지에 약 10만㎡(약 3만평)의 토지를 얻었습니다. 북한의 국토환경보호성이 발행하는 ‘토지리용권’을 획득했죠. 2006년에는 추가로 개성공단과 도로 하나를 마주보고 있는 곳에 6만6000여㎡(약 2만평)의 토지를 얻었습니다. 당시 당일치기로 끝나는 개성 관광수요를 노리고 호텔을 지으려고 했죠. 현대아산과 협의해 호텔 설계까지 마무리지었는데 사업이 자꾸 늦어져 6만6000여㎡ 중 2300여㎡(약 700평)를 떼어내 GS칼텍스와 함께 주유소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주유소가 완공되는 시점에 박왕자씨 사건이 터졌죠. 기름을 팔려면 기름을 갖고 들어가야 하는데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통관이 어렵게 된 겁니다. 경색이 풀리기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다가 5·24조치까지 터지면서 6년간 사업이 공중에 떠버렸습니다.”

유 위원장은 “5·24조치 이전에는 북한 사람들에게 부탁해 완공된 주유소의 관리를 맡겼지만 5·24조치 이후에는 그것도 어려워졌다”며 “북한에 방치해 놓은 주유소를 생각하면 속이 탄다”고 했다.

비대위 황창환 홍보위원장의 경우는 남북 교역을 하다가 사업을 접은 경우다. “2004년부터 8년간 북한산 조개를 수입했습니다. 그동안 북한과의 사업은 비교적 성공적이었습니다. 5·24조치 직전 배 두 척에 조개가 실려오기 전까지 물건과 돈을 주고받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5·24조치 직전인 2010년 5월 22일 차를 몰고 마지막으로 북한에 들어갔다 오기도 했죠. 그러다 5·24조치로 모든 사업이 중단됐습니다. 은행에 돈을 빌린 게 조금 있는 상태에서 회사를 강제로 없애는 ‘직권폐업’을 세무서로부터 당하기도 했습니다. 세무서로 달려가 난리를 친 끝에 회사를 살렸지만 사업이 중단된 상태에서 직권폐업 당한 경협업체들도 많을 겁니다.”

비대위 측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힘들었던 지난 기간 동안 정부로부터 이렇다 할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다.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의 경우 특별자금 대출 등 정부로부터 신속한 도움을 받은 반면, 자신들은 오랜 기간 실효성 있는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박탈감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남북경협 업체들에 두 차례의 대출을 해줬는데 조건이 까다롭고 액수가 적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질 못했습니다. 수백억원씩 투자한 업체들에 1차의 경우 최대 대출금액이 15억원이었고, 2차는 12억원이 고작이었습니다. 단순 교역 임가공 업체들은 기껏 1000만~2000만원을 지원받는 수준이었죠. 그것도 1, 2차 대출을 합해 1000여개 기업 중 대출을 받은 업체가 200개 정도에 불과합니다.”

유 위원장은 “현재 통일부에서는 남북경협 기업들에 대한 3차 대출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 들었지만 다른 부처들과 공감대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며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경우 정부와 토지공사의 보호 아래 안정적인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보험을 들 수 있지만 우리는 보험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우리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만 하더라도 잘한다고 표창도 받았는데 어느 순간 대한민국 정부가 스스로 대북 사업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반면 북한이 문을 닫은 개성공단은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정부에 특별기구까지 만들어가며 대응해 130일 만에 극적으로 문이 열렸습니다. 우리로서는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합리적 해결책이 주어졌으면 합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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