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식' 행사 아닌 과감한 제안 필요"
상봉 2153명 불과, 신청자 중 40% 숨져



박근혜 대통령이 8·15 광복절 68주년 기념사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북측에 제안했다. © News1 정회성 기자


통일부가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공식 제의한 가운데 남측 상봉 대상자들은 입을 모아 우리 정부의 과감한 제안과 북한의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실향민들은 실무회담이 성사되면 상봉 행사를 정례화하고 '보여주기식' 행사가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을 것 등을 요구했다.

이상철 일천만이산가족협의회 위원장은 16일 뉴스1과 통화에서 "이산가족 문제가 해결돼야 다른 남북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상봉 제안에는 일단 환영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의 상봉 행사는 대상자들이 서로 속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도 없고 재결합도 전제되지 않는 '보여주기식' 행사에 불과했다"며 "단순한 상봉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향민들에게 시간이 얼마 없는 만큼 우리 정부는 실무회담에서 상봉 신청자 전원을 대상으로 한 전면적인 생사확인, 서신교환, 상봉, 재결합 등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향민들은 상봉 신청이 시작된 1988년 이후 지금까지 불과 2만여명만 북쪽의 가족을 만나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체념하는 마음이 크다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함경남도 북청군에 동생 2명과 고모 2명을 남겨두고 온 김경재씨(82)는 "대통령이 제안을 잘 했다. 환영한다"면서도 "대상자가 되는 건 로또 당첨보다 어려우니깐…"이라며 말을 흐렸다.

이어 "우리 정부가 100~150명씩 상봉을 시키면서 민족적인 행사를 하고 있는 것처럼 선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75세 이상 실향민이 2만명도 안 되는데 이들이 죽기 전에 꼭 한 번 고향 땅을 밟아볼 수 있도록 북한에 과감한 제안을 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8·15 광복절 68주년 기념사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북측에 제안했다. © News1 정회성 기자


황해남도 장연군이 고향인 이용진씨(83)는 "이런 식으로 (상봉 행사를) 하면 나 죽은 다음 뼈가 다 부서질 때가 돼서야 상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남이 만나면 만나는 가보다 누가 눈물을 흘리면 '나도 저 자리에 있었으면 눈물을 흘렸겠구나' 생각하는 게 전부"라고 흐느꼈다.

또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가족이지만 꼭 만나고 싶다"며 "우리 정부의 과감한 제안을 북한도 흔쾌히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상봉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한적)에 따르면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2000년부터 지난 5월까지 상봉 신청자는 총 12만8808명으로 이중 약 40%인 5만5347명이 사망해 현재 7만3461명이 상봉을 기다리고 있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개최된 18회의 대면상봉을 통해 1만7968명, 7회의 화상상봉을 통해 3748명 등 모두 2만1716명이 북쪽의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청자 가족들을 제외하고 신청자 기준으로만 봤을 때는 각각 1874명, 279명 등 모두 2153명으로 그 수가 크게 줄어드는 실정이다.

한적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상봉 행사 제의 소식에 오전부터 문의 전화가 많이 오고 있다"며 "이산가족 상봉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대다수 실향민들을 위해 생사확인만이라도 이뤄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적은 이날 대책회의를 열어 실무접촉시 대표단 구성 등을 논의하고 19일부터 서울 중구 남산 본사에 있는 이산가족 민원접수처에 자원봉사자를 추가 배치키로 하는 등 만전을 기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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