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식 제도 적극 수용… 현재 외국기업 2000개 입주
김정은의 확고한 의지와 군부 개입 차단이 성공 열쇠




남북은 14일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양국 정부 당국자로 구성된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이하 남북공동위)'를 구성하기로 했다. 외국 기업 유치 등을 통한 공단의 국제화, 가동 중단에 따른 피해 보상 문제 등을 모두 이 위원회에서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남북공동위나 개성공단 국제화는 모두 중국 쑤저우(蘇州)공단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장쑤(江蘇)성에 있는 쑤저우공단은 1994년 중국과 싱가포르가 공동 개발한 국제 공단이다. 쑤저우공단은 당시 중국 최고 지도자인 덩샤오핑(鄧小平)의 결단에 따라 조성됐다. 1992년 남순강화 이후 개혁·개방 모델을 찾던 덩샤오핑은 쑤저우공단 추진에 앞서 "싱가포르는 사회 질서가 좋다"며 "우리는 그들의 경험을 차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쑤저우공단은 설립 초기부터 입법·사법권 등을 제외하고는 싱가포르 제도를 대거 받아들였다. 공단 관계자의 채용과 급여, 사회보험제도까지 싱가포르식 제도를 따왔다. 공단 지구 안에서 일하는 중국인에게도 모두 이런 싱가포르식 제도가 적용된다.

양국의 체제 차이로 인한 문제는 최상위 기구인 연합조정위원회를 통해 해결하는데, 싱가포르 부총리와 중국 부총리가 대표로 참여한다. 투자 유치 등 공단 운영의 실무는 쑤저우공단 관리위원회가 맡으며 투자 프로젝트의 비준, 해외 투자자에 대한 비자 발급 등에 대해 독자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쑤저우공단은 설립 이후 지금까지 총 189억달러(약 21조원)의 외자를 유치했다. 80㎢ 면적에 삼성전자 등 외국 기업만 2000여개가 입주해 있다. 개발 초기에는 중국의 국영기업이 주를 이뤘지만 현재는 정보통신·바이오·나노 분야의 최첨단 기업과 연구소가 밀집해 있다. 공단 내에는 싱가포르국립대 등 23개 학교가 위치해 있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을 쑤저우공단으로 만드는 구상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도 개성공단 국제화를 위해 쑤저우공단의 법제를 연구하고 시찰단을 파견했었다.

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쑤저우공단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정부가 싱가포르식 경제·행정 관리 제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투자자들을 안심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성공단을 쑤저우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개방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밝히고 군부 등의 개입을 완전히 차단해야 한다"며 "하지만 북한이 그런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6월 4일 개성공단 국제화에 대해 "외세를 끌어들여 개혁·개방에 대한 '제도 통일' 준비를 다그쳐 보려는 범죄적 기도의 산물"이라고 주장했었다.

중국과 싱가포르 양국 기업과 정부가 투자하면서 첨단 산업을 유치한 쑤저우공단과 달리 개성공단은 한국 기업이 투자하고 북한은 노동력만 제공하는 단순 가공 기지에 가까워 해외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