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도 '압박'도 아닌 새 실험… 남북관계 완전 정상화는 요원]

장관급 회담 열릴 수도… '천안함·연평도' 사과 않고 北 비핵화 진전 안돼
朴정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추진하기엔 부담될 듯


남북이 14일 개성공단 정상화에 전격 합의함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해온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비로소 첫걸음을 뗐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은 지난 연말과 올 초까지만 해도 장거리 로켓 발사, 제3차 핵실험과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도발 수위를 높이며 새로 들어선 박근혜 정부를 압박해왔다. 과거 '햇볕 정책' 시절의 남북관계의 전범(典範)이었던 '도발→협상→지원'으로 이어지는 패턴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새 정부는 이런 패턴을 끊겠다고 선언했고 개성공단 회담에서 이를 '실험'했다. 북한에 상식과 국제규범에 맞는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북한이 앞으로도 이런 식의 협상에 응한다면 다른 현안들도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다른 현안들은 이번 건보다는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이 문제다.

◇한반도프로세스, 이제 첫걸음 뗀 것

남북이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함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다른 남북 간 현안에 대한 논의도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 당장 추석을 전후해 이산가족 상봉 논의가 이뤄질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금강산 관광 재개도 거론될 수 있다. 북한은 지난달 11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명의로 우리 측에 보낸 전통문에서 "개성공업지구문제는 말 그대로 현 북남관계의 시금석"이라며 "(금강산관광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은) 개성공업지구 회담에 달려있다"고 한 바 있다. 우리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회담은 언제든 열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당국자 회담은 이른 시일 내에 열릴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환호하는 입주기업 비대위… 남북 개성공단 7차 실무회담에서 5개항 합의서가 채택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개성공단 정상화 촉구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한재권 비대위원장(앉아 있는 이 중 오른쪽) 등 관계자들이 손을 잡으며 웃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금강산 관광의 경우는 '북한의 사과'가 변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최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10주기 행사차 방북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구두(口頭)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금강산 관광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쪽은 그동안 금강산 관광 재개의 조건으로 재발 방지와 함께 박왕자씨 살해 사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해왔다. 반면 이번 개성공단 정상화 과정에서도 북한은 '사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와대는 이번 개성공단 정상화에 대해 과거 민주당 정부의 '햇볕 정책'도 아니고, 이명박 정부의 '압박 정책'도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남북 관계에 '제3의 길'을 열었다고 자평(自評)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7·27 정전협정체결일 기념사에서도 언급한 'DMZ(비무장지대) 평화공원' 문제도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북한의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최근 방북한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에게 "개성공단이 잘되어야 DMZ공원 문제도 잘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포괄적인 남북 관계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6월 열려다 무산됐던 장관급 회담이 재개될 가능성도 커졌다.

◇5·24 제재 해제, 천안함·연평도 등 낙관 어려워

그러나 남북관계가 정상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 당장 남북 간 경제교류나 협력 사업이 시작되려면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시작된 5·24 대북 제재 조치가 풀려야 한다. 그 뒤로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지면서 남북관계 정상화는 더 어려워졌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이를 해제하기 위한 기본조건으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들었다. 그러나 북한은 천안함 폭침 사건의 경우엔 자신들 소행이란 자체를 부정하고 있고,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해서도 사과할 뜻이 전혀 없다. 이런 문제에 대해 아무런 사과 없이 대북 제재를 풀고 교류·협력 사업을 정상화하는 것은 박 대통령으로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 당국자도 이날 "5·24나 금강산 제재 해제는 개성공단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했다. 박 대통령도 지난 대선 때부터 천안함·연평도 문제에 대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지나갈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더구나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하는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북한 비핵화의 진전'이 전제조건인데, 북한이 쉽게 응할 리가 없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을 통해 볼 때 북한이 6자회담 등에서도 과거와 달라진 자세로 나올 경우 한반도 상황이 변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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