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장


개성공단 폐쇄는 특정한 협상 전략으로 여러 번 재미를 본 자가 흔히 범하는 '성공의 환상'에 빠진 북한의 자충수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같이 남북 관계가 살벌할 때도 그 당시 북의 최고지도자가 개성공단만은 건들지 않았다. 북한 권력이 세습된 후 한·미 군사훈련을 빌미로 공단 폐쇄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과거처럼 여론이 들끓어 남남 갈등이 일어나고 우리 정부가 무릎을 꿇을 것으로 오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박근혜 대통령이 의연하게 대응하여 그들의 상투적 수법에 말려들지 않았고 대통령의 지지도까지 수직상승했다.

이럴 경우 서울과 평양의 협상력은 '협상 결렬 비용'에 의해 결정된다. 문 닫은 개성공단으로 더 피해를 보는 쪽은 당연히 5만여개의 일자리를 날려버린 북한이다.

여기서 오랜 남북 협상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찍힌다. 성공의 환상이 깨진 북의 협상력이 휘청거리는 것이다. 햇볕정책으로 우리가 온갖 '퍼주기'를 할 때는 받아 챙기는 그들이 갑(甲)처럼 군림했고, 우리가 을(乙)처럼 질질 끌려 다녔다.

14일 7차 협상이 열린다. 우리는 수석대표에게 상당한 권한이 주어지는 반면, 조평통의 박철수는 거의 재량권이 없다. 주어진 협상 지침을 그저 되새기는 수밖에 없다. 이 점이 실무회담의 한계다.

개성공단을 둘러싼 북한 내부 다양한 세력들 사이의 엇갈리는 이해관계도 협상에 활용해야 한다. 현재 조평통과 내각의 경제통은 재가동을 원하고, 정전협정 파기 위협으로 지난봄 한반도를 긴장시켰던 강경파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는 그들 내부의 파워게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느 세력이 득세하느냐에 따라 7차 회담에서 풀어놓을 보따리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

남과 북 모두를 위해 개성공단은 다시 문을 여는 게 좋다. 여론에 등이 떠밀려 성급히 협상 타결을 서두르지 말고 지금까지 해 온 것과 같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바탕을 둔 '원칙 협상'(principled negotiation)을 고수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너무 경직되었다고 비난하는데 이는 하드 협상과 원칙 협상을 혼동하는 데서 나온다. 하드 협상은 전혀 양보를 안 하고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키려 하지만, 원칙 협상은 '양보할 것은 양보하지만 지켜야 할 원칙은 꼭 지키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내세우는 원칙은 재발 방지 약속이다. 평양으로부터 다시는 정치·군사적 사안과 순수 경협 사업인 개성공단을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보장을 받아내는 것이다. 재발 방지 장치가 없으면 북한에도 이로울 게 없다. 불안한 국내 기업들이 다시 개성공단에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부담이 있고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부는 원칙 협상을 고수하여 이번 기회에 남북이 '새로운 협상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북핵 문제와 달리 개성공단 문제는 서로가 한 발짝씩만 다가서면 윈-윈(win-win)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북한 스스로 과거의 비생산적 협상 전략이 더 이상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변화해야 한다. 우리도 유연한 상생의 원칙 협상을 정착시켜 새로운 남북 협력의 물꼬를 터나가야 한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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