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여론독자부장


북한은 얼마 전 헌법이나 노동당 규약보다 상위 규범이라는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39년 만에 개정하면서 제10조 제1항에 '백두(白頭)의 혈통으로 영원히' 운운하는 대목을 포함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이를 '김씨 일가의 세습을 정당화, 규범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분석하는데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이미 북한은 김씨 왕조다. 따라서 '백두의 혈통' 운운했다고 그것을 세습의 명문화로만 해석하면 현재 북한에서 진행 중인 '모종의 사건 흐름'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북한에 대해 전문성이 없는 기자가 이렇게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오히려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실하게 찾을 수 있다.

'백두의 혈통'론은 조선 영조 때의 '삼종(三宗) 혈맥'의 북한식 변형이다. 삼종 혈맥의 정확한 의미와 맥락을 이해한다면 지금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내부적으로 직면한 반발의 성격을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다. 삼종 혈맥이란 조선 후기의 효종 현종 숙종 세 임금의 피를 잇는 사람을 뜻한다. 백두의 혈통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다. 그런데 삼종 혈맥은 동시에 '영조'만을 지칭했다.

숙종과 장희빈 사이에서 난 경종은 우여곡절을 거쳐 왕위에는 올랐지만 자식이 없고 병약했다. 노론은 따라서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약점이 있는 연잉군을 경종의 후사(後嗣)로 밀었다. 이때부터 노론은 자기들끼리 연잉군을 부를 때 고유명사처럼 '삼종 혈맥'이라고 불렀다. 효종 현종 숙종으로 이어지는 피 이외에 어느 누구도 왕위를 넘봐서는 안 된다는 논리인데 흥미롭게도 현종도 효종의 독자였고 숙종도 현종의 독자였다. 효종의 위, 즉 봉림대군의 형제 후손 중에서는 어느 누구도 왕위를 넘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삼종 혈맥론이 갖는 강점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피'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영조 이후로 조선의 임금 중에서 정비(正妃) 사이에서 나온 임금은 거의 없고 대부분 후궁에게서 난 왕자가 왕위를 계승했다. 정조는 후궁의 자식도 아닌, 후궁의 자식 사도세자의 자식이다. 왕실에서 적서(嫡庶) 문제는 통치의 권위를 세우는 데 결정적이다. 적통을 잘 이어오던 조선에서 최초로 후궁 손자인 선조가 왕위에 오르자 불과 몇 년도 안 돼 당쟁이 시작된 것도 적서 문제가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의 파워게임에서 그만큼 중대한 요인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김씨 왕조도 같은 왕조라는 점에서 실록의 영향권에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백두의 혈통'이란 말에는 이복형인 김정남보다도 못한, 김정은 출생의 콤플렉스를 그렇게 해서라도 가려보려는 절박함이 들어 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김정은을 '깔보려는' 권세가들의 움직임이 만만치 않음을 시사한다. 그래서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이번에 북한이 '백두의 혈통'을 명문화하면서 동시에 제7조에 '세도(勢道) 배척'을 명시했다는 점이다. 조선의 영조는 그렇게도 '삼종 혈맥'을 강조했고 그 덕에 정조도 즉위할 수 있었지만 정조가 죽자마자 조선에서는 곧바로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 정치'가 이어진다. 그것은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니라 왕실의 권위가 약화된 데 따른 어쩔 수 없는 흐름이기도 했다. 이미 북한에서도 그런 흐름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백두의 혈통'과 '세도 배척' 운운했다는 것은 그만큼 김씨 왕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조짐이다. 게다가 그걸 10대 원칙에 명문화했다는 것은 내부의 위기가 그만큼 깊다는 뜻일 것이다.




/조선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