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6월 북한 내부의 최고 통치 규범인 '당의 유일(唯一)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39년 만에 바꿨다고 한다. 김일성은 1974년 아들 김정일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한 직후 이 10대 원칙을 만들었다. 북한은 이후 헌법이나 노동당 규약보다 10대 원칙을 더 높게 떠받들어왔다. 북한이 39년 만에 10대 원칙을 개정한 까닭은 김정일의 3남 정은으로 이어진 3대(代) 세습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다.

북한은 이번에 10대 원칙 10조 2항에 '우리 당과 혁명의 명맥을 백두의 혈통으로 영원히 이어나가며… 그 순결성을 철저히 고수하여야 한다'고 했다. 백두 혈통은 김씨 왕조를 신성시하는 표현이다. 북한은 이어 '금수산 태양궁전(김일성·김정일의 시신 보관 장소)을 성지로 꾸리고 결사 보위'(제2조), '백두산 위인들의 초상화·동상·영상 등은 정중히 모시고 철저히 보위'(제3조) 등을 새로 넣었다. 그러면서 1974년판 10대 원칙에 들어있던 '공산주의 위업의 완성'이란 말을 뺐다.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라 김씨 일가(一家)의 봉건 왕조라고 스스로 밝힌 것이다.

북한은 2012년 개정한 헌법에 '핵 보유국'이란 표현을 넣었다. 전 세계에서 헌법에 핵무장을 자랑하는 문구를 집어넣은 경우는 북한밖에 없다. 북한은 이번에 '10대 원칙' 서문에서 '수령님과 장군님의 영도에 의해 핵 무력을 중추로 하는 군사력과 튼튼한 자립 경제를 갖추게 됐다'고 밝혔다. 헌법에 이어 '노동당 10대 원칙'에까지 핵무장을 김씨 왕조가 이뤄낸 가장 중요한 치적(治績)으로 못박아 버렸다. 협상을 통해 핵을 포기하는 길을 막아버리겠다고 작심한 듯하다.

정부는 14일 재개되는 남북 회담에서 북한으로부터 개성공단의 운영을 국제적 기준으로 끌어올리는 법적·제도적 보장을 받아내겠다는 방침이다. 이번에 나온 북의 내부 최고통치 규범을 보면 북한에 국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남북 관계의 새 틀을 짜는 노력이나 북핵 협상 자체를 포기해선 안 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숙명이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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