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해범 논설위원


6월 말 한·중 정상회담은 전체적으로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지만 모든 분야에서 A학점을 받는 것은 아니다. 국제사회의 최대 관심사였던 북핵 문제는 아무래도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울 것 같다.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근본 입장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중 미래 비전 공동성명' 북핵 부분에 '북한'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 그 결과 성명은 '북한 비핵화' 대신 '한반도 비핵화', '북한 핵개발' 대신 '유관 핵무기 개발'이란 모호한 말로 채워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언론사 논설주간 간담회에서 "그것은 중국을 여러 가지로 배려해 그렇게 표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도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중국 지도자들이 여러 표현으로 북한 비핵화에 대한 확실한 의지를 표명했다"며 '한반도 비핵화'가 사실상 '북한 비핵화'란 투로 말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우리 측이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하기에는 너무나 중대한 문제이다.

일부 연구자는 '한반도 비핵화' 용어가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기도 전에 한국에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 60여년의 발전 성과를 송두리째 파괴할 수도 있는 북한 핵무기에 대응해 우리 정부는 미국 전술핵 재반입이나 자체 핵 개발 같은 카드를 대북·대중·대미 협상에 활용할 수 있는데도, '한반도 비핵화' 합의로 스스로 발목을 묶었다는 것이다. 아산정책연구원 김한권 연구위원은 "(이 때문에) 중국은 그토록 우려하던 '동북아 핵(核) 도미노' 현상을 차단하는 실익을 거두었다"고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는 중국이 남북한과 관계를 동시에 강화해 대미 관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 입장에서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것과 북한 정권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을 동시에 추구하기는 어렵다. 중국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를 바라지만, 그것을 위해 식량·에너지 중단 같은 강력한 압박을 할 생각은 없다. 그렇게 했다가 북한 정권이 붕괴하거나 사회 안정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대사는 5월 '포린 어페어스' 인터뷰에서 3차 핵실험 이후에도 대북 인도주의 원조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웃 형님'이 도와주는데 북이 핵을 포기할 리 없다. 중국은 상충하는 두 목표를 통해 북한에는 숨 쉴 공간을 주고 한국에는 체면을 살려주는 '양수겸장'을 두고 있다. 이것이 미·일 동맹을 견제하려는 전략이란 것은 누구나 안다.

시진핑 정부 출범 후 중국의 대북 정책에서 비핵화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관측도 있다. 윤 장관은 관훈토론회에서 "과거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북한 안정-비핵화-대화 순이었는데 최근 비핵화-한반도 안정-대화 순서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 정법대(政法大) 한셴둥(韓獻棟) 교수는 "2009년 이후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북한 정국의 안정 유지'를 중심으로 설계된다"고 강조했다. 북한을 다루는 방식이 다소 강경해졌지만 기본 전략에는 변화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에 북한 비핵화의 강력한 의지가 있는지, 또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가 매우 불투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북한 정권도 지탱하면서 비핵화도 이뤄보겠다는 중국의 이중적 태도다. 북핵 문제에서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려면, 중국이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서 벗어나 '북한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비핵화를 가로막는 대북 무상 원조를 재검토해야 한다. 대중(對中) 외교의 다음 목표는 여기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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