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인공기(인공기) 게양사건에 대한 우리 검찰의 사법처리 방침’을 문제삼아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에게 “돌아가라”고 했다는 황원탁(황원탁) 외교안보수석 발언이 파장을 낳고 있다. 황 수석은 나중에 발언을 부인했지만, 야당과 전문가들은 “있을 수 없는 일에 정부가 저자세로 대응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여당은 “쓸 데없는 말을 했다”며 황 수석을 겨냥하는 분위기였다.

◆한나라당 이회창(이회창) 총재는 전말을 보고 받고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정상회담 후 기가 막힌 일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계속 문제를 지적할 수도 없고…”라고 했다.

권철현(권철현) 대변인은 “국가자존심을 짓밟는 명백한 내정간섭행위며, 국제외교관례를 무시한 굴욕외교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권 대변인은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국내상황을 보고받지 못했음을 설명했다’는데, 제대로 보고받았다면 사과라도 하려 했느냐”고 물었다.

김용갑(김용갑) 의원은 “오만방자함까지 감춰주며 김정일을 미화하는 정부의 저자세 굴욕 대북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 위원장의 “돌아가라”는 발언 자체에 대해서는 언급을 꺼리면서, 이를 발설한 황 수석의 경솔함만 나무랐다. 고위 관계자는 “외교안보수석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은 “북한은 국제관례나 의전 같은 것을 중시하는 나라가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전문가 반응 송영대(송영대) 전 통일부차관은 “김 위원장이 ‘돌아가세요’라고 했다면 이는 북한이 과거부터 회담장에서 해온 위협전술의 일환”이라며 “국가보안법을 무실화(무실화)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송 전 차관은 “우리 측도 상대가 국보법 철폐를 겨냥해 행한 무례한 발언에 대해 당당하게 설명해 나갔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평길(최평길) 연세대 교수는 “우리 쪽이 항상 지나치게 저자세로 나가는 것이 문제”라며 “외교안보수석이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런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제성호(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정부가 성과에만 연연하다 북한에 주도권을 완전히 내줬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이는 엄청난 외교적 결례로 남북기본합의서의 ‘내정 불간섭’ 조항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 교수는 “법무부가 사법처리 방침을 밝혔다가 조용해진 것으로 봐서는 북쪽 요구를 들어준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민철기자 mc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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