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나쁜' 행동 할수록 부각되는 朴 대통령 '자유롭고 새로운' 한반도
野圈의 자살골에 여론도 변화…
65년 대결 끝 찾아온 블루 오션… '제2햇볕' 가능성까지 고려 처신하는 공무원들 '물먹이기' 먼저 극복해야



류근일 언론인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칭화대(淸華大)에 가서 한 연설 가운데 이 대목이야말로 그의 심신지려(心信之旅)의 핵심 주제였다. "동북아에 진정한 평화와 협력을 가져오려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가 새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것." "남북한 구성원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안정되고 풍요로운 아시아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한반도."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띄우는 통일 어젠다였다. 지금까지 일부는 통일을 마치 북한이 주장하는 통일전선에 남쪽 정당·사회단체들이 호응해 주는 것처럼 말해왔다. "그건 주석궁으로 가는 징검다리 아니냐?"고 하면, 그들은 이를 대뜸 반(反)통일, 분단 고착이라고 매도했다. 그러나 누가 통일 자체를 반대한다고 했나? 수령 독재와 요덕수용소가 한라산까지 연장되는 '나쁜 통일'을 반대한 것이지.

"남북한 구성원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통일"이라고 한 것은 바로, 국내 이동을 하는 데도 일일이 여행 허가증을 받아야 하는 '나쁜 통일' 대신, 여행의 자유 등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는 '좋은 통일'을 하자는 것이었다. 북한과 남쪽 일부가 이에 호응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당연히 '좋은 통일'에 반대하는 반통일, 분단 고착으로 찍힐 수밖에 없다.

이쪽에서도 역대 정부는 '남북한 구성원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통일' 이전에, 그런 통일을 '지금의 주제'로 삼는 것을 유보하거나 아예 기피해 왔다. 우파 정권은 통일을 먼 일로 밀어둔 채 분단의 안정적 관리에만 주력했다. 좌파 정권은 '북한이 밀면 밀려주는' 의미의 평화(?)에만 집착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새로운 한반도'는 그런 소극적이거나 영합(迎合)적인 자세를 선제적인 것으로 바꾸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럴 만한 때가 되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럴 만한 때란 우선, 북한의 세습 절대 왕정이 3차 핵실험 이후 문명 세계의 완전 따돌림을 받게 된 시점이다. 북한은 이에 핵(核)과 미사일로 버티려 한다. 그러나 오늘의 국제사회에서는 핵이면 다가 아니다. 핵보다 문명국의 요건을 갖춰야만 더불어 끼워주고 거래도 하고 지원도 한다.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이 전혀 그런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늦게나마 알아차린 것 같다. 그랬기에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가 만장일치 아니었는가?

북한이 저렇게 말이 안 통할 지경이 돼갈수록 중국은 동북아 안정을 위한 '플랜 B'를 마련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려면 한국이라는 카드가 필요했다. 한국 역시 중국이라는 카드가 필요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로운 한반도는 동북 3성을 비롯한 중국의 번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 것은 결국 "서로 필요한 둘이서 만나 새 판 짜자"는 것이었다. 불량 국가 북한의 나쁜 행동이 오히려 박 대통령의 '새로운 한반도'에 데뷔 기회를 준 셈이다.

국내에서도 박 대통령의 '새로운 한반도'가 민심의 '필'에 꽂힐, 그럴 만한 때가 축적되고 있었다. 범야권(汎野圈)의 연속적 자살골이 초래한 여론의 변화가 그것이다. 가까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괴물'이라 험구했대서 "그렇다면 제2 연평해전 영령들은 '괴물'을 위해 전사한 거냐?"는 분노를 샀다. 대선 전에는 이석기, 김재연, 김용민, 이정희 현상이 역풍을 불렀다. 민주당 쪽이 한·미 FTA를 '이완용'이라 매도한 것도 빈축을 샀다. 이런 자충수들은 그들을 근사하게 보던 사람들에게도 "이런 사람들이었나?" 하는 충격을 주었다. 이것은 반사적으로 박 대통령의 '자유롭고 새로운 한반도'가 먹힐 국내 기반을 넓혀주었다.

이런 국내외 정세 변화는 통일을 둘러싼 지난 65년간의 대결 끝에 대한민국 진영에 모처럼 찾아온 블루 오션일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흐르는 전류(電流)도 여전히 '쎄'다. 김정일은 "남쪽 사람들이 자주성이 좀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비위 맞추고 다니는 데가 너무 많다"고 했다. 이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들어서시기 전까지는 점진적 자주에 대한 의지도 없었습니다." 마치 80년대 386의 '종속이론'이라도 듣는 기분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새로운 한반도'는 이런 마주 달려오는 역사관과 불가피하게 부딪칠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딛고 선 공무원들의 속내가 그와 반드시 같다고 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세상이 다시 '제2의 햇볕' 쪽으로 넘어갈 것도 계산하고서 처신하는 수재들이다. 박 대통령은 그래서 메인 게임에 앞서 자신이 거느린 '영혼 없는 관료'들의 부작위(不作爲)에 따른 대통령 물먹이기부터 먼저 극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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