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유린하듯 ‘북조선’의 김정일이 ‘남조선’ 정치를 극점으로 몰아가고 있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언론과 여론이, 그리고 거기에 여야가 뒤엉켜 ‘차가운 가슴 뜨거운 머리’로 김정일을 놓고 ‘국론분열’을 마다 않는 혼전을 거듭하고 있다.

‘김정일 쇼크’는 과장이 아닌 듯하다. ‘쇼크 사(사)’는 피해야겠기에 김정일을 포함한 이 싸움의 당사자들에게 세 가지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김정일은 이미 국내 정치무대에 데뷔해있다는 사실, 당사자들이 남한 주민들을 계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의 논쟁은 통일문제나 민족문제가 아닌 정치문제라는 사실 등이 그것이다.

첫째, 김정일은 이제 ‘국내’ 정치인이나 다름없다. 신(신) ‘남북정치시대’의 주역으로서 그는 국내정치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 건설적 의미이든 파괴적 의미이든, 과장된 의미이든 축소된 의미이든, 어떤 의미에서든 말이다.

그 스스로 우리 내부를 향해 “과거 (한국)정치인들이 후회하게 만들자”라든가 “내가 서울가면 (당신을 국회의원에) 3선, 4선 시켜주겠다”라고 얘기하는가 하면, 전직 대통령들의 방북 초청장 매수(매수)까지 ‘임의 조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정도다. 이제 그를 국내정치의 링 밖으로 밀어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실체의 상호존중이 어차피 현실적이라는 뜻이다.

둘째, 이 싸움판의 당사자들(김정일 포함)이 가장 무섭고 그래서 가장 중요한 주민(유권자)들을 외면하고 있다. 자칫 지금의 야당은 이미 도래해 버린 남북정치시대를 위한 상상력 있는 일정표는 고사하고, 여기에 탑승할 정치적 의지와 의사조차 불분명한 것으로 유권자들 눈에 비칠 수 있다. 엄청 크게 터진 정치적 ‘대박’을 공동 관리해 가겠다는 ‘실사구시’형 접근법이 현명할 것이라는 뜻이다.

여당도 북쪽보다는 야당쪽에다 ‘텃세’를 물리려한다는 인상을 줄 경우 공정한 유권자들의 동의(동의) 구조를 훼손시킬 수 있다. 남북의, 그리고 남남(남남)의 핫 라인을 풀 가동해서 지금의 난전을 수습하는 여당의 정치력은 필수적이고 필요하다.

북한은 한국의 야당과 특정 언론을 적으로 돌린 채 ‘새 시대’를 열 수 있다는, ‘광폭(광폭)’이 아닌 ‘광폭(광폭)’ 정치식 발상을 이제는 전환해야 한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금 남한주민들에게 정치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평가받고 있다. 남한의 제1언론에 대해 ‘폭파’ 운운하고, 제1당 대표에 대해 ‘놈’ 운운하는 것은 본인이 ‘한국’ 정치인이 되어 있다는 상황인식의 결여 탓이다.

셋째, 지금 국회와 신문지상과 평양방송 등을 통해 다투고 있는 쟁점은 통일이나 통일 방안에 관한 문제도, 민족이나 민족장래에 관한 것도 아니다. 오직 정치적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 정치적 동기와 이해타산 밑에서 제기되고 비화되고 있는 문제일 뿐이다. 정치의 테제는 상대적이고, 따라서 늘 타협 가능하다. 일본의 ‘천황제’인 양 논의 자체를 금기시하거나, 길이 뻔한 정치문제를 협량하게 몰아가는 쪽에는 오직 정치적 손실이 있을 뿐이라는 뜻이다.

크게 볼 때, 6·15 남북공동선언은 북의 경제적 필요와 남의 정치적 필요, 주변 강국들의 안보적 필요의 산물이다. 모두는 자기 필요를 위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

유권자는 이것이 포지티브 섬의 ‘윈·윈’ 게임이 될지, 제로 섬의 서바이벌 게임이 될지 지켜보고 있다. 결국 국민이 이번 게임의 가장 엄정한 룰이다.

/ 황 주 홍 숭실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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