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브루나이에서 열린 제20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연례 회의는 북한이 국제무대에서 사실상 외톨이 신세라는 점을 실감케 했다. ARF는 1994년 만들어진 다자간 지역 안보 협의체로, 동남아 국가들과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미국 캐나다 호주 EU(유럽연합) 등 27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ARF는 매년 연례 회의를 가진 뒤 회의 결과를 의장 성명 형식으로 발표해 왔다. 의장 성명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회원국들의 주장을 소개해 왔다. 이 때문에 한·미 등이 요구하는 북한의 비핵화 의무 준수 요구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라는 북한의 주장이 병기(倂記)되는 일이 되풀이되곤 했다.

그러나 올해 의장 성명에는 북한의 주장이 단 한 문장도 들어가지 않았다. 북한 입장이 통째로 빠진 것은 북한이 지난 2000년 ARF의 23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한 후 처음 있는 일이다. ARF는 의장 성명에서 "북한은 (북한의 핵 활동을 금지한) 유엔 안보리 결의와 9·19 공동성명을 준수하라"고 촉구했고, 이어 지난 5월 라오스에서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 9명에 대해 "(북한이) 국제사회의 인도적 우려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탈북자 문제가 ARF 의장 성명에 명기된 것도 처음이다. 한 외교관은 "그간 국제회의에서 북한을 두둔해 온 중국과 일부 동남아 국가가 북한에 등을 돌리면서 올해 회의는 26개 회원국이 한목소리로 북한을 압박하는 26대1 구도로 진행됐다"고 전했다.

북한의 외교적 고립은 자초한 일이다. 북한이 작년 12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장거리 로켓을 쏘고, 지난 2월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3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국제사회에는 북한의 핵 도발을 더 이상 그냥 놔둘 수 없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북한은 최근 고위급 외교관을 차례로 중국과 러시아에 보내는 등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단호하고 분명하게 핵 포기를 요구한다면 북한도 국제 정세가 자기들로 하여금 핵 문제에서 중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북핵 외교의 성패(成敗)가 걸린 중대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의 외교적 고립을 북핵 해결 기회로 만들 포괄적이고 유연한 전략이 필요하다.

북한은 과거 국제적 고립이 깊어지면 대남(對南) 도발을 통해 위기를 키워 고립에서 탈출하는 길을 모색하곤 했다. 지금의 국제사회 분위기에서 북한의 추가 도발은 사실상 자살(自殺) 행위나 다름없다. 그러나 북한은 이성적·합리적 판단을 기대하기 힘든 상대인 만큼 정부는 북의 도발 가능성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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