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가 중요한 전환점에 섰다. 5월 초 한·미 정상회담과 6월 초 미·중 정상회담에 이어, 6월 27일 중국 베이징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번 회담의 의제는 매우 포괄적이다. 한·중 관계의 심화발전과 북핵문제를 포함한 북한 리스크 관리, 나아가 한반도의 미래 비전까지 폭넓게 다뤄질 전망이다. 회담이 끝나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가 윤곽을 드러내게 된다. 특히 북핵문제에 대한 한·미·중의 공조 수준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6자 회담이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 그만큼 중요한 회담이다.

박(朴)·시(習) 회담을 앞두고 한국 내에 회담 성과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다. 크게 두 가지 점이 작용하고 있다.

첫째, 박 대통령에 대한 중국인들의 호감도가 높고, 양국 정상도 과거 다른 어떤 정상보다 친밀하며 서로를 신뢰한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통역 없이도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큼 중국어 실력을 갖추고 있다. 중국의 저명한 현대철학자 펑유란(馮友蘭·1894~1990)이 쓴 ‘중국철학사’를 읽는 등 중국 사상에도 관심이 깊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05년 시진핑 당시 저장성(浙江省) 당서기가 방한했을 때 부산에서 서울까지 먼 길을 달려와 2시간이나 깊은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쌓았다. 지난 3월 중국에서 번역된 박 대통령 전기는 5월 해외 정치인물 전기도서 중 판매 1위를 기록했으며, 중국 외교부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은 최근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은 중국 인민의 오랜 친구(老朋友)”라고 치켜세웠다.

둘째,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점도 한국 측의 ‘기대’를 키운다. 북한 핵실험을 규탄하는 민간인 가두시위가 대도시에서 벌어졌고 북한을 비판하는 지식인도 크게 늘었다. 천안함·연평도 피격 때 북한을 두둔했던 인민해방군 소장 출신인 뤄위안(羅援) 중국 전략문화촉진회 부회장은 “북한의 핵실험은 중국의 국익을 해쳤다”고 질타했다. 이런 중국 내 분위기를 감안하면, 27일 한·중 정상회담에 대한 한국 측의 기대가 높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양국 새 지도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리는 정상회담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한국정부는 무엇보다 중국의 외교전략과 한반도 정책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시진핑 외교의 핵심 개념인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정확히 파악해 그것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에 대비해야 한다. ‘신형대국관계’란 중국이 미국에 요구하는 ‘신형미중관계’를 말한다. 여기서 ‘대국’이란 곧 미국과 중국, 즉 G2를 가리킨다. 6월 7~8일 시 주석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미라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시종일관 이 외교 개념을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시 주석은 ‘신형대국관계’에 대해, 중·미 양국이 서로를 존중하고(相互尊重), 협력해서 공동으로 승리하여(合作共?), 양국민과 세계 인민들에게 행복을 주자(造福兩國人民和世界人民)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개념에 대해 주미대사를 지낸 저우원중(周文重) 보아오포럼 비서장은 6월 9일 중·미관계포럼에서 “대국이 충돌하고 대항했던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길을 가자는 것”이라며 “중국과 미국도 이익의 합치점(利益會合)을 찾는 과정에서 대결을 극복하고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기존의 패권국(미국)과 도전국(중국) 사이에 힘의 전이(轉移)가 일어날 때 전쟁 위험이 높아진다는 미 정치학자 오간스키의 ‘힘의 전이이론’을 뒤집는 시각으로, 미국 사회에 만연한 ‘중국위협론’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국무원 외사판공실 부주임을 지낸 마쩐강(馬振崗) 중국공공외교협회 부회장은 같은 포럼에서 “냉전시기 미·중 수교는 서로의 전략적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면, 냉전이 끝난 뒤 양국을 잇는 전략적 유대가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향후 10년간 중국 외교전략을 지배할 ‘새로운 대국관계’론에 대해 일본 아사히신문은 6월 11일자 사설에서 “(이 관계는) 서로를 존중하며 협력을 중시하자는 것”이라며 “아태(亞太)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미·중이 협력하는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양대 초강국이 대결보다는 협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신형대국론은 논리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안정, 북핵문제 해결에 유리한 국제환경을 제공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하지만 ‘구호’와 ‘현실’은 늘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이 원하는 ‘새로운 미·중 관계’를 미국도 원하느냐는 점이다.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3월 초 아시아소사이어티 연설에서 “미·중 양국이 새로운 관계모델(new model of relations)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의 용어를 의식한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중국이 원하는 것과 같은 ‘대등한 관계’ 개념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미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담당국장을 지낸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최근 칼럼에서 “미국이 원하는 미·중 관계 모델은, 중국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 규칙을 준수하고 정당한 몫의 기여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아직 중국을 ‘특별대우’할 생각이 없다는 얘기다.

이와 반대로 중국은 미국 측에 “각자의 핵심 이익을 ‘존중’해줄 것”을 요구한다. “중국의 핵심이익인 대만, 티베트,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미국이 인정하라”는 뜻이다. 중국이 ‘새로운 미·중 관계’의 시금석으로 삼는 ‘상호존중’의 문제에서 두 대국의 입장은 완전히 갈린다. 미국은 여전히 대만에 무기를 수출하여 중국의 분노를 사고, 동-남중국해 문제에서 일본, 베트남, 필리핀의 편을 들어 중국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미국은 당분간 중국을 ‘대등한 국가’로 대접할 뜻이 없으며, 중국도 이에 반발할 수밖에 없다. 결국 동아시아에서 미·중 간의 전략적 불신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중 사이에 깊이 파인 ‘불신의 골’은 한반도에서 대화와 협력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한·중 관계 발전에도 제약요인이 된다. 한·중 관계가 경제·사회 분야를 넘어 군사·안보 분야로 나아가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시 주석은 이달 초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개발 불용과 핵 보유국 지위 불인정’에 합의했다. 미·중 정상이 유일하게 의견 일치를 본 문제가 ‘북한 비핵화’인 셈이다. 중국은 그동안 유엔 제재를 원칙대로 시행하고 금융제재와 세관통관 강화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중국 대북정책의 속을 들여다보면 겉으로 드러난 압박과는 다른 큰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중국은 2011년 말 김정일 사망 후 가장 먼저 3대 세습을 지지했고, 김정은 정권의 안정을 위해 지금도 인도주의적인 식량지원과 유류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 광산개발 등 다양한 대북사업과 북한 여행을 허가해 자금난에 시달리는 북한경제에 돈줄 구실을 한다. 압록강·두만강 유역의 도로와 철도 등 SOC(사회간접자본)를 대대적으로 건설, 장래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함경·평안 남북도는 이미 위안화 경제권으로 편입되고 있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북한문제에 대한 중국의 우선순위가 ‘평화-안정-비핵화’에서 ‘비핵화-평화-안정’ 순으로 바뀌었다는 지적이 많다. 중국 지도자와 학자들의 발언에서도 이 같은 변화가 확인된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중국이 북한 정권의 붕괴와 내부 혼란을 원치않는다는 점이다. 즉 중국의 대북 태도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북한을 다루는 방식만 달라졌을 뿐 본질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안정’과 ‘비핵화’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하고 있고, 이는 사실상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선언적인 입장 표명 외에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해법을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회담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이유다. 시진핑 정부의 ‘신형대국관계’론은 앞으로 미·중 관계뿐만 아니라 동북아와 한반도에도 서서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것이 한반도에 드리울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한국정부의 선제적이고 창의적인 외교적 발상과 지혜가 필요하다.



/조선일보 지해범 논설위원 겸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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