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문화부 차장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21일 얼마 전 라오스에서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 9명을 등장시키면서 "남조선 괴뢰패당의 납치로 끌려가다 공화국 품으로 돌아온 청소년들"이라고 소개했다. 그걸 본 초등학교 5학년 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빠, 괴뢰패당이 뭐야?"

말끔하게 차려입은 북송 청소년들은 겉보기에 우리 아이들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북으로 돌아간 그 아이들은 앞으로 남쪽의 또래 아이들과 다른 언어 환경 속에서 자랄 것이다. 그중엔 타인을 향해 공공연히 쏟아내는 온갖 종류의 욕설과 증오의 표현들이 포함돼 있다.

북한 당국의 막말을 전하는 조선중앙TV의 방송 언어는 우리 기준으로 볼 때 온통 징계 대상이다. 한국방송(KBS)의 경우, '방송출연자를 위한 KBS 한국어'라는 교재를 만들어 출연자 교육에 사용한다. KBS 한국어연구부 이성민 교육팀장은 북한의 대남 비방 발언에 대해 "시청자 중심의 경어를 사용하고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두 가지 원칙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북핵 3차 실험 이후 갈등이 깊어지던 지난 3월 조선중앙TV 여성 앵커는 "워싱턴과 남한 괴뢰도당을 핵찜질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핵'과 '찜질'을 결합한 조어 솜씨가 무섭고도 놀랍다. 개성공단에서 북측 근로자를 철수시킨 뒤에는 "우리는 밑져야 본전"이란 표현을 통해 남북관계를 보는 시정잡배적 인식을 부끄러움 없이 드러냈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원색적인 언어 도발을 비난하는 여론이 일자 "천하 불한당들이 품격이니 응징이니 하며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날뛰고 있으니"라는 말로 자신들의 막말을 정당화했다.

욕설에 가까운 표현만 문제 되는 것이 아니다. '원칙을 지키는 대북 관계'를 천명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청와대 안방을 차지하고 일으키는 독기 어린 치맛바람'이라고 비난한 데서는 후진적인 여성 차별 의식이 어른거린다. 국제적인 기준에서 써서는 안 될 인종 차별적 언사도 서슴지 않는다. 부시 대통령 시절, 흑인 여성으로 미 국무장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에겐 '불검둥이'와 '라이스X'이라며 비난한 적도 있다. '표준말'을 일컬어 북한에서는 '문화어'라고 부른다. 거칠고 상스러운 말을 그 '문화어'로 해댄다는 것이 부조리극처럼 느껴진다.

북한이 멋대로 쏟아내는 막말에 비해 국제사회의 언어적 대응 수위는 참으로 밋밋하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이제 단추만 누르면 발사되게 되어 있고 일단 발사되면 원수들의 아성이 온통 불바다가 될 판" "싸움의 날 처참하게 짓이겨지는 적진" 등의 협박성 발언에 대해 고작 "엄청나게 많은 용납할 수 없는 언사"라고 '점잖게' 항의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최근 북한을 '특별하고 엄청난(unusual and extraordinary) 위협'이라고 했다. 하지만 오바마가 표현력이 부족해서 그런 말을 쓴 게 아니다.

"북한이 가진 비대칭 전력은 핵이 아니라 막말" "남한은 북한의 감정 노동자"란 반응이 우리 국민 사이에 나돈다. 모두 속 시원하게 쏘아주지 않고 참는 우리 정부에 대한 응원이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제재 때문에 국제적으로 고립당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지만, 두 번 다시 안 볼 것처럼 저주성 언사를 쏟아내는 그들의 태도가 고립을 자초하고 환멸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핵을 머리에 지게 된 우리는 그래도 북한을 상대라도 해주지만, 해외 언론들은 북한의 위협을 분석 대상이라기보다 코미디나 만평 소재로 취급한다. 그래서 '막말은 관 속에서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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