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3월 중 워싱턴에서 고위급회담을 개최하기로 하고, 일본도 북한과 국교정상화 본회담을 3월 중 평양에서 열도록 추진함에 따라, 반세기 이상 냉전을 겪고 있는 한반도에도 봄은 찾아오는가, 하는 기대가 높아가고 있다.

2000년의 새봄을 앞두고 ‘한반도의 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낙관론-비관론 그리고 신중론이 팽팽하게 맞서 있다. 이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한반도 탈냉전에 대한 역사적 안목이 필요하다. 북한은 소련의 해체에 따른 사회주의 국제체제의 붕괴와 함께 새로운 생존전략을 1990년대 초반부터 추진해야 했다.

북한의 탈냉전 생존전략은, 국제적으로 미-일을 비롯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국내적으로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강조하고, 남북관계의 차원에서는 기존 적대정책의 유지를 선택하였다.

이러한 전략의 구체적 표현으로서, 북한은 미국과는 1994년의 ‘영변 위기’를 넘어서서 제네바 핵 합의를 통해 관계개선에 원칙적으로 합의하였고, 일본과는 1992년까지 관계개선 협의를 8차에 걸쳐 진행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한반도는 쉽사리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영변 위기’에 이은 ‘금창리 위기’와 ‘대포동 위기’를 겪어야 했다.

이러한 추위의 악순환 대신에 2000년의 한반도가 정말 봄 같은 봄을 맞이할는지를 점치기 위해서는 북한,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미묘한 변화를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북한은 미-일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미국-일본과 관계를 개선할 용의가 있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조-미, 조-일관계를 개선하려고 한다고 하여 혁명적 원칙과 자주적 입장을 절대로 양보하거나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2000년에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과 일본은 북한문제가 위기국면으로 치닫는 것을 원하고 있지 않으나, 동시에 국내 정치-경제에 부담이 되는 양보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미-일을 비롯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이 북한의 변화를 가져와서 결과적으로 남북관계의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 속에 북한의 미-일과의 관계개선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북 고위급회담은 북한이 요구하는 북-미 평화보장 체계 마련이나 주한미군 철수와 미국이 요구하는 북한의 미사일 및 핵 문제 해결이라는 의제의 타협점을 찾기 위해서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일-북 국교정상화 본회담도 북한의 관할권 등에 관한 기본문제, 식민지 지배 배상을 다루는 경제문제, 북한의 탄도미사일 등의 국제문제, 그리고 기타 쌍방의 관심사를 구체적으로 다루게 되면 쉽사리 해결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북한이 미-일과의 관계개선 과정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체제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위험성이 높은 자본주의의 황색바람이며, 이를 막기 위해서 북한은 보다 촘촘한 ‘모기망’을 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에서 보자면, 북한은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이루어질수록 적대적 경쟁관계에 있는 남한정부와의 관계개선을 보다 조심스러워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본격적인 ‘한반도의 봄’을 맞이하려면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이나 남북 정상회담과 같은 비현실적 제안보다는 훨씬 세련된 21세기 복합전략의 추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위험을 가져다줄 수 있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개발능력의 비현실화, 북한의 반외세와 반파쇼 논리에 기반한 대남정책의 무력화(무력화), 그리고 21세기 북한인민경제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적극적 포용정책을 복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구상을 개발해야 한다.

/ 하 영 선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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