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방위가 16일 '중대담화'를 발표하고 미국에 군사 긴장 완화, 평화체제 전환, '핵 없는 세계 건설'을 위한 고위급 회담을 제의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으로 자신들의 변함없는 의지이자 결심이라고 했다. 북은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이 중국 시진핑 주석에게 관련국과 대화 의사를 밝힌 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대화를 제의했었다. 이번에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북 대화를 제안하는 것도 정해진 수순일 것이다.

그러나 남북대화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진지한 대화를 바란다는 뜻이 잘 보이지 않는다. 비핵화 문제도 '핵 없는 세계'를 언급하면서 미국과 핵 군축회담을 하겠다는 종전 자세를 버리지 않았다. 자신들은 누가 인정하든 말든 핵보유국이라며 자신들에게 비핵화 조치를 취하라고 하기 전에 대북 제재부터 없애라고 했다. 대화를 하자면서도 미국을 '전쟁 방화범''파렴치''날강도'라고 거칠게 비난했다.

미·북은 작년에 북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면 미국이 식량 24만t을 주기로 합의했으나, 그 후 북은 광명성 3호를 발사하고 3차 핵실험까지 했다. 뒤통수를 맞은 미국은 북이 비핵화 의지를 보이고 관련 조치를 하기 전에는 북과의 대화가 의미 없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 결국 북은 미국이 이제는 과거식 대화에 응할 가능성이 작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중국에 '대화를 제안했다'는 걸 보여줄 겸 비핵화할 생각도 없이 대화를 한번 던져보는 것으로 보인다.

북은 지금 중국의 대화 압박을 이런 식으로 넘기면서 시간을 벌면 차츰 중국의 대북 압박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북은 아직도 북핵에 대한 중국의 인식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 측은 '북한의 경제 구원자이자 에너지 제공자로서 핵무기 개발을 강행하는 김정은을 굴복시키기 위해 어떤 지렛대를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이례적으로 구체적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 신문은 '중국이 북한 붕괴로 조성될 위험보다 핵 보유로 인한 한반도 불안정이 중국에 더 위협이 된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라는 미국 당국자 평가도 전했다. 사실은 더 확인해야겠지만, 분명한 것은 북핵 문제에서 시진핑의 중국은 더 이상 과거의 중국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북은 앞으로 달라진 현실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그 후 북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에 대비해야 한다. 북이 정말로 비핵화를 협상 대상으로 올려놓게 된다면 먼저 물밑에서 미국과 직접 통하려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다시 한 번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 판을 흔들어보려 할 수 있다. 먼 일이 아니다. 한반도 위기는 둘째 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조선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