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북한학


2007년 개혁주의적 경향을 가진 혐의로 숙청됐던 박봉주가 지난 4월 다시 총리로 임명되자 북한에서 경영 개선 조치에 대한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또 지난해 화제가 됐던 농업 개혁의 첫걸음인 '6·28방침'도 완전히 버리지 않고 시범으로 계속 실시하는 증거가 가끔 나온다. 북한 정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선신보에서도 경제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자료가 나왔다.

필자는 김정일 정권이 중국처럼 개혁을 할 희망이 별로 없다고 15년에 걸쳐 주장해왔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는 개혁 가능성이 큰 편이라고 본다.

김정일 정권이 개혁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정치 불안정과 체제 붕괴에 대한 공포다. 남북 경제 격차가 전례 없이 심해 북한은 중국식 개혁을 시도했을 경우 국내에서 남한의 풍요롭고 자유로운 생활에 대한 정보의 확산이 본격화됐을 것이다. 결국 북한 민중은 정권 정당성에 대한 의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독일식 통일을 통해 하루아침에 남한만큼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달리 말해 북한 지도부는 개혁이 중국처럼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기보다는 동독처럼 체제 붕괴를 초래할 가능성이 너무 커 개혁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합리주의적 정책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에 중요한 변수 하나가 바뀌었기에 정책도 변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고책임자를 비롯한 엘리트 계층의 평균 연령이라는 변수다.

개혁이 치명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지만 현상 유지도 영원히 계속될 수 없다. 북한 정권이 시장 세력을 그대로 단속·진압하고 시대착오적인 스탈린식 국가사회주의를 계속 유지한다면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이루지 못해 중국과 남한을 비롯한 이웃 나라들에 비해 크게 뒤처지고 말 것이다. 외부 정보의 확산, 부정부패 심화 및 국가에 대한 공포의 약화는 자발적인 시장화가 가져오는 사상 변화와 더불어 조만간 체제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 지금 북한 지도부는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김정일 때와 마찬가지로 개혁개방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처지다.

비유를 들어보자. 암환자에게 의사가 수술도 할 수 있고 그냥 약을 먹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의사는 수술이 너무 복잡해서 죽을 가능성이 70%이지만 잘된다면 환자가 암 없이 오랫동안 살 수 있는 반면에 약치료를 한다면 암 성장을 늦출 수는 있지만 막을 수는 없으니 오래 살아야 5~7년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설명을 받은 환자가 수술을 하느냐 약을 먹느냐 하는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 중에는 환자의 나이가 제일 중요하다. 60세 노인이 죽을 가능성이 살아남을 가능성보다 더 큰 수술을 선택하지 않고 약으로 6~7년 동안 더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면 합리주의적이다. 반대로 30세 젊은 사람에게는 목숨을 거는 위험한 수술이 명백한 죽음을 연장하는 약치료보다 더 현명한 선택이다.

60세를 넘은 김정일은 위험한 수술과도 같은 개혁을 선택하지 않고 약치료와 비슷한 현상 유지 정책을 선택했는데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고 본다. 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개혁을 통해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나라를 살리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 개혁의 성패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향후 3~4년 내 북한에서 변화에 대한 소식이 나오게 된다 해도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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