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14일 국가정보원의 불법 정치 개입 인터넷 댓글 의혹 사건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공직선거법(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및 국정원법(정치 관여 금지)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원 전 원장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종북(從北) 활동에 적극 대처할 것을 지시해 결과적으로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야권 대선 후보 또는 야당을 비방·반대하는 댓글 73건을 작성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총선과 대선을 앞둔 지난해 초부터 국정원 간부회의 등에서 "종북 좌파들이 북한과 연계해 다시 정권을 잡으려 하는데 금년에 확실히 대응하지 않으면 국정원이 없어진다", "우리 (국정)원이 앞장서서 대통령과 정부 정책의 진의를 적극 홍보하고 뒷받침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한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의 이 같은 지시가 국정원 직원들로 하여금 특정 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 의견을 유포하는 선거 개입 행위를 불러왔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원 전 원장 측은 "종북 대응을 지시했을 뿐이고 정치·선거 개입은 하지 말라고 강조해왔다"고 주장했다. 당사자의 주장이 이같이 엇갈리는 만큼 검찰 내부에서도 원 전 원장에 대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계속됐다. 민주당은 이 사건을 '거대한 선거 개입 음모'로 보고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집권당이라면 몇몇 인터넷 사이트에 댓글을 올리는 방식으로 선거 결과를 바꾸겠다는 정치 공작을 했겠는가. 결국 원 전 원장의 선거 개입 여부는 법원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국정원의 본업(本業)은 북한의 동향을 사전에 파악하고 북한이 앞으로 대한민국의 존립에 무슨 문제를 야기할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이다. 국정원은 그간 북한의 핵실험과 천안함·연평도 도발 징후를 사전에 포착하지 못했고, 2011년 말 김정일의 급사(急死) 소식에 허둥댔다. 그런 국정원이 정권 치적(治績) 홍보에 앞장서고 정치색 짙은 댓글 작업에 나선 것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이 걱정하는 국정원의 가장 큰 구멍은 대북 업무에 난 구멍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여당은 물론이고 집권을 목표로 하는 민주당 등 정치권은 국정원이 해선 안 될 일, 안 해도 될 일에 정신이 팔려 국가 안보에 구멍을 내는 일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국정원 운영 방식의 근본 틀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국정원 핵심 간부와 요원들 역시 자신들의 행동 윤리를 재점검해야 한다. 국정원 직원들이 권력 전환기 때마다 현 정권에 충성하고 미래 정권에 줄을 대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는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이 5년마다 정치 개입 의혹에 휘말리는 수모(受侮)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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