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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외교의 총체적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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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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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순

4년 동안에 장관이 다섯 번, 차관이 네 번 바뀌고 그밖에 간부들도 1년이 넘기가 무섭게 바뀌는 조직에서 효율적인 업무의 수행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외교통상부가 바로 그런 조직이다. 국민의 정부 초대 외교부장관이었던 박정수 장관이 1998년 여름 한·러시아 외무장관회담 직후 경질된 이후 1년을 넘긴 장관이 거의 없다. 심지어 외무장관이 한·미 외무장관회담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 속에서 해임된 ‘참사’까지 빚어졌다.
이제는 어느 나라도 한국 외무장관의 권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고 중요한 협상도 하려고 하지 않을지 모른다.

본국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외무장관의 권위를 외국 정부가 인정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8월, 외무공무원법 개정으로 만국 공통의 외교관 인사원칙인 외교관의 계급제(rank-in-person)가 전면 폐지됐다. 대신 모든 인사의 기초를 직위에 두는 소위 직위제(rank-in-job)가 채택됐다. 그 이후 본부 및 재외공관의 보직인사에 과거에는 없었던 대혼란이 야기되고, 내·외부로부터의 인사청탁은 법개정 이전보다 더 심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또한 법개정으로 근무성적평가에 의한 외교관 적격심사를 외교관 임관으로부터 13년 후에 하도록 되어 현실적으로 직원들간에 무사안일의 분위기가 조장되고 있다. 외교체제의 하드웨어에 중대한 고장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외교체제의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는 외교 정책은 어떤가. 사실상 기능 마비상태로 보인다. 햇볕정책을 둘러싼 한·미간의 혼선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국은 표면상으로는 햇볕정책에 대한 계속적인 지지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 양국 간에는 엄청난 견해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입장은 매우 분명하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의 축」으로 지목하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및 미사일 개발 중단과 수출방지를 위하여 가능한 모든 조치를 엄격한 검증과 상호주의 원칙 아래서 취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은 9·11 테러사건 직후 이미 감지됐다. 당시 미 상원 군사분과위원회에 출석한 울포위츠 국방차관은 증언을 통해 김정일을 오사마 빈 라덴 및 사담 후세인과 동일선상에 올려놓았다. 노련한 외교관이라면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리 없다.

미국의 이러한 입장은 한국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동조하지 않으면 미국은 미국이 가야 할 길을 갈 것이며, 한국은 한국대로 햇볕정책을 계속 밀고 가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외교부는 이러한 미국의 분명한 입장을 애써 외면했다. 나아가 미국이 햇볕정책을 계속 지지한다는 식의 아전인수식 주장으로 정부와 국민을 현혹시키고 외교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국가안보에 위협이 초래될 수도 있는 행동을 취하고 있는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다.

외교부는 이제라도 미국의 대북정책과 그 배경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기초로 한·미 공조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햇볕정책만이 한반도 평화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의 인식에도 문제가 있다. 교류와 화해, 협력을 통한 평화공존의 실현이 목적인 햇볕정책은 그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검증과 상호주의원칙을 적용하지 않은 결과, 파격적인 경제지원에도 불구하고 북측은 합의사항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등 오만불손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맹목적인 포용과 유화정책이 결과적으로 전쟁을 유발했다는 것을 우리는 과거 역사를 통하여 알고 있다. 한국외교의 총체적인 위기는 외교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바로잡는 데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외교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외교부의 각성과 강한 실천의지, 그리고 정부 및 국민의 지지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아주대 겸임교수ㆍ전 주 이스라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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