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인공기 게양에 대한 우리 검찰의 사법처리’ 방침을 문제삼아 김대중 대통령에게 “돌아가라”고 요구했었다는 황원탁(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의 발언 파문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어이없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라며 혀를 찼다.

정상회담장에서 벌어졌다고 믿기 어려운 ‘외교 결례’ 자체가 우선 놀랍지만, 황 수석이 이같은 내용을 공개석상에서 ‘중계방송하듯’ 털어놓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매일 낮 12시에 열리는 미 국무부 브리핑에서는 대변인과 보도진들 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곤 한다. 관심대상인 외교협상에 대해 보도진은 “상대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했느냐”, “이견이 남은 쟁점이 뭐냐”고 질문 공세를 퍼붓지만 “미안하다.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는 대답이 되돌아 올 뿐이다. 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되고 나면 가장 어려웠던 대목에 대한 뒷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하지만 기껏해야 “상대방이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묘사 정도다. 협상장에서의 발언내용을 시시콜콜 털어놓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간주된다.

물론 황 수석 발언 파문이 향후 정상회담 전개과정에 미칠 영향의 궁극적인 선악(선악)을 가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외교의 ABC’라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상식 이하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더구나 정상회담 수행원들의 ‘무용담 늘어놓기’식 실언이 이어지면서 엄한 ‘함구령’이 내려졌으며, 그 함구령이 전달된 통로가 황 수석이었다는 점에서 더 더욱 납득이 안된다.

황 수석이 “녹음을 들어보니 얘기가 사실보다 더 나갔다”고 말을 주워 담으면서 덧붙였다는 “분위기를 재미있게 설명하다 보니까”라는 대목에 이르면 그저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김창균 정치부기자 ck-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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