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개혁이후 원화가치, 미 달러대비 99% 하락

최근 북한에선 중국 위안화와 미국 달러화 사용이 사상 최대로 급증해 김정은 체제하의 북한 당국이 경제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3일 보도했다.

북한에서 외환사용이 급증한 것은 지난 2009년 북한 정부가 화폐개혁을 단행해 북한 주민들이 저축한 엄청난 자금을 일거에 무용지물로 만든 이후부터라고 북한 문제 전문가, 탈북자, 중국인 무역업자들은 말했다.

북한 전문 인터넷 뉴스 사이트인 '데일리 NK'가 추적한 환율 자료에 따르면 화폐개혁 이후 북한의 암시장에선 북한 원화의 가치가 미 달러화에 비해 99%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외환 의존도가 높아지면 북한 정부는 경제 정책을 실행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 경제가 통제력을 미치지 못하는 민간 경제가 생겨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삼성경제연구소는 북한에서 통용 중인 외환 규모를 약 20억 달러로 추산한다. 이는 북한 경제 전체 규모인 215억 달러의 약 10% 수준이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마커스 놀랜드 북한 문제 전문가는 달러화와 위안화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커서 북한 정부가 손을 쓸 수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 중국 접경 혜산에선 위안화 거래가 일반적

북한 양강도(함경북도) 혜산과 접경지대인 중국 지린성(吉林省)의 창바이(長白)에선 북한 관리들이 식량보다도 위안화를 거래 수단으로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북한 주민들이 교역으로 얻은 위안화는 곧바로 혜산에서 통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혜산은 1990년대 이래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인구 19만의 도시다.

지난 4월 데일리 NK는 올 2월 혜산의 한 공개시장에서 비밀리에 촬영된 영상물을 공개했다. 이 속에선 북한 행상인들이 장갑이나 점퍼 등을 매매하면서 공공연하게 위안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포착돼 있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연맹(FIDH)은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북한 정부가 외환거래를 사형까지 가능한 중범죄로 다스리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또 다른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도 탈북자 90여 명을 인터뷰한 결과 외환을 소지하거나 사용한 죄로 처벌받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보고했다.

북한 주민들과 접촉이 잦은 한 중국인은 "북한에는 마루 밑에 외환을 감춰둔 사람들이 많다"면서 "아무도 북한 당국을 믿지 않게 때문에 외환을 은행에 맡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 북한 화폐는 계속해서 가치 하락 중

북한 화폐는 지난 2009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갑작스런 화폐개혁을 명령한 이후 계속 가치가 하락했다.

북한에선 미 달러화가 통용된 지 벌써 수십 년이 지났다. 외국과의 교역을 통해 달러화가 현금으로 유입됐기 때문이다.

최근엔 위안화도 북한과 중국 간 국경무역과 밀무역으로 증가로 인해 늘어나 연간 약 60억 달러에 해당하는 위안화가 북한에서 통용되고 있다.

데일리 NK에 따르면, 암시장에서 거래 중인 북한 화폐의 가치는 화폐개혁 전보다 30분의 1로 줄어든 1달러당 약 8500원에 거래 중이다. 미 달러화 대비 북한 원화의 공식적인 환율은 달러당 130원이다.

크리스토퍼 그린 데일리 NK 이사에 따르면, 북한과 중국 접경지대에선 거래 중인 외환의 약 90%가 경화(硬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그 밖의 곳에선 민간 시장에서 거래 중인 외환의 약 50~80%가 지폐라고 추산했다.

◆ 북한의 비공식 시장 규모는 국가 경제 규모를 능가

삼성경제연구소의 동영승 선임 연구원은 지난달 '북한의 외환 사용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북한 주민들 중 원화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고 적었다.

한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북한의 외환 거래 규모가 지난 2000년 약 10억 달러에서 현재 약 20억 달러로 늘었다고 추산했다. 이중 약 50%는 미 달러화, 40%는 위안화, 나머지 10%는 유로화라고 동 연구원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동 연구원은 또한 북한의 비공식 경제 규모는 국가 경제보다 더 크다면서 "외환이 없으면 북한 경제는 기능을 상실할 것이다"고 말했다.

미국 관리들은 일전에 북한이 100달러짜리 미 달러화 지폐를 아주 정교하게 위조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이 위조지폐는 북한 내부에서보다는 외부에서 체제 유지를 위해 사용된다고 믿어지고 있다.

◆ 주체사상은 이름뿐

북한 정부는 국가 이념으로 주체사상을 따르고 있다고 표방한다. 하지만 북한대학원 대학교의 양문수 교수는 북한 당국이 경화의 통용을 막을 의지가 전혀 없다고 진단했다.

양 교수는 탈북자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위안화를 선호하고 북한의 엘리트 계층은 미 달러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과 연구 기관인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새조위)'에 따르면, 탈북자들 중 약 70%는 북한의 가족들에게 현금을 보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해 이 현금이 중국 현지의 비밀기관들을 통해 위안화로 세탁돼 북한으로 유입되며, 그 규모가 연간 1000만 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북한에서 한국 화폐가 사용된다는 보고는 없다. 최근 폐쇄된 개성공단에서도 5만300여 명의 북한 근로자들에게는 임금이 한국 화폐가 아닌 미 달러화로 지급됐다.

북한 정부가 외환의 통용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도 약간은 있다.

북한은 나진·선봉 시에 위치한 국영 '황금의 삼각지은행(Golden Triangle Bank)'에서 중국의 위안화를 북한의 원화로 환전해주고 있다.

환율은 위안화에 대해선 1200원, 달러화에 대해선 1350원이다. 이는 공식 환율인 1달러당 130원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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