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범우사 판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다시 펴든다. 읽는 이들로서는 잘 짐작이 안가는 투키디데스의 규범적인 판단에 따라 때로는 지루할 만큼 상세하게 서술된 사실(사실)들을 새로운 주의로 음미해본다. 요점 정리형태로 암기한 세계사 지식과는 먼 당대인의 목소리로,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이 모(모)도시인 케르키라에 이어족의 침략을 호소하면서 복잡하게 얽히는 국제관계가 마침내는 대립되는 두 동맹의 맹주(맹주)인 아테네와 스파르타의대립으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같이 상세한 발단에 비해 결말의 서술은 너무 허술하다. 시케리아 원정에서 참패한 아테네가 겨우 힘을 회복해 펠로폰네소스 동맹측의 함대를 격퇴하는 해전으로 끝이 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투키디데스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문장으로 전쟁 21년째임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스파르타의 아테네 점령 여러해 전의 일이다.

따라서 항복을 결의하던 아네테인의 비장감이나 처음 스파르타인들의 아테네로 입성하던 날의 참담한 광경은 이 책에서 읽을 수 없다. 그 뒤 스파르타 치하에서 아테네인이 겪어야 했던 수모와 고통도 마찬가지다. 투키디데스가 쓰기를 그만두었는지 썼는데 실전(실전)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성적인 아테네인들이 소크라테스를 처형하는데 동의한 감정적인 배경이 되는 그 시대가 비어있다.

뒷사람들의 추측은 이 책이 크게 세 시기로 나뉘어 쓰였다고 본다. 첫 시기는 개전 이후 니키아스 화평에 이르기까지의 10년으로 투키디데스는 처음 독립된 전쟁사로 쓴 듯하다. 그뒤 다시 아테네의 시케리아 원정이 시작되자 그는 역시 독립된 시케리아 전기로 그 부분을 기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테네가 놀라운 복원력으로 해군을 재건해 스파르타와의 투쟁을 전개해 나가자 비로소 앞의 두 전쟁사가 독립된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 하나의 대전(대전) 이룬다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투키디데스는 이 책 어디에서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란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이어진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투쟁을 하나의 일관된 전쟁으로 보았던 그의 견해는 남다른 데가 있다. 거기다가 이 책에는 부분적이나마 냉전(냉전)의 개념이 이미 도입되어 있다. 전쟁사가(전쟁사가)이기에 앞서 한 아테네인으로서 조국 아테네가 번영의 절정에서 한 초라한 패전국으로 전락해, 마침내는 적국의 괴로정권에 지배를 받게되는 과정을 정리하고 있다는 점도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지난 번 남북 정상회담을 전기로 한반도는 지금 두루 춘풍이다. 헌법으로 보면 의연히 국토를 참절한 반국가 단체이고, 국제법적으로는 휴전 상태일 뿐인 교전당사국 북한은 아무 문제없는 내 겨레 내 동포요, 통일도 머지 않은 눈앞의 일인 양 들떠있다.

북한에 대한 경계나 불안을 얘기하면 여지없는 촌놈이 되거나 반통일 세력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은 그같은 들뜸 혹은 자신감의 근거이다. 아마도 경제적 우위를 믿고 있는 듯한데, 실은 그게 그리 미덥지도 못한 것이거니와 설령 믿을만하다 해도 이토록 턱없는 자신감의 근거는 되지 못한다.

경제적 우위를 바탕으로 동독을 흡수통일한 서독의 예도 있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처럼 경제적으로는 해운(해운)상업국에다 델로스 동맹의 군자금까지 보유하고 있던 아테네와 비교도 되지 않았던 농업국 스파르타가 30년의 전비(전비)를 감당하고도 마침내 아테네에 승리한 일도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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