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한반도 위기조짐이 어느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지를 결정하게 될 중요한 변수들 중 하나는 북한정권의 상황인식과 대처방식임은 부연설명을 필요치 않는다. 그 대처방식에 있어 핵과 생화학 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와 그 운반수단인 미사일 문제에 대한 투명성을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1차적 과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북한이 테러세력과의 직·간접적인 연계의혹을 완전히 떨치기 어려울 것이며,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압박을 피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작년 한해동안 장거리 미사일의 분사시험을 비롯해 최소한 서너 차례 이상 미사일 엔진시험을 실시한 흔적이 포착됐으며, 중동국가들에 미사일 관련 기술과 부품을 수출해 왔다는 미 CIA보고서는 우려할만한 일이다. 더구나 미국은 작년 9·11테러 이후에도 북한의 미사일 관련 활동이 계속 증가해 왔을 뿐 아니라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가 발표되는 순간에도 미사일 수출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우리 측에 알려왔고, 이런 일들이 「악의 축」 발언을 자초하게 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9·11 후 두 개의 반테러국제협약에 가입하는 등, 일견 자제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위장이었다는 것인지 북의 진실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다.

이런 와중에 북한 외무성이 5일 『미국이 미사일 때문에 우리를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적대시하기 때문에 우리 미사일 문제를 시비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나선 것은 사태를 정확히 인식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북한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국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을 은밀히 개발하고 비밀거래를 하면서 『왜 우리한테만 그러냐』고 외쳐보아야 국제사회의 이해를 구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는 이같은 북한식 항변이 일부 먹혀들어 협상입지를 강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9·11 이후 「세상이 달라졌음」을 북한은 빨리 알아야 한다. 『똑같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라도 그걸 보는 (미국의)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한승수 전 외교부 장관의 지적을 북한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북한이 진정으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미국과의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북한정권에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북한이 이번 위기에 현명하게 대처한다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돌파구를 마련하고, 나아가 국제사회에서의 위상도 진일보시킬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도 다행스런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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