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계의 이상 기류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부시 미국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통해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규정한 이후 미국의 외교·국방 수뇌부가 연일 북한에 대해 후속 공세를 펴왔다. 미국의 공세와 북한의 되받아치기에 동원된 수사만으로 보면 전쟁 일보전의 상황을 방불케 한다.

애당초 이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국민을 불안케 한 것은 우리 정부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침묵이었다. 침묵은 당혹감의 다른 표현이다. 매일 쏟아지는 대결의 언사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국민에게 방향과 해석을 예시해야 마땅한 정부가 스스로 놀라고 있다면 어느 국민이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시정부는 출범당시부터 김정일의 북한을 건설적 대화 파트너로 보는 김대중정부의 북한관에 회의적이었다. 더욱이 미국은 9·11테러 이후 세계질서를 선과 악, 문명과 반문명의 대결 구도로 파악하고, 반문명 계열에 테러조직과 대량 살상무기 수출국가를 집어넣었다. 이 같은 새로운 도식이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데 햇볕정책에 대한 집착 때문에 한국정부의 눈에만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국민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침묵 다음에 등장한 이 정부 고위 외교당국자들의 엇갈리는 발언과 전망이었다. 퇴임한 한승수 외교부장관은 미국의 대북 입장이 상당히 사실에 근거해 있고, 부시행정부의 판단은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정말 그렇다면, 그 역시 미국의 합리적 대북 우려와 우리 정부의 희망적 낙관을 조율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층 황당한 것은 후임 장관과 차관보가 전임자와 달리 태평스런 낙관론을 피력하고 있는 사태다. 이것이야말로 임진왜란 발발전에 일본의 상황을 정반대로 보고했던 황윤길과 김성일 사태의 재판이다.

더더욱 국민이 마음 놓고 발을 뻗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정계, 특히 집권 민주당의 대응 태도다. 이 마당에 국회 대표연설에서 『독재의 손을 잡아주던…』하는 「외교」 아닌 「정서」를 드러낸다든지, 의원들 미국규탄 성명문을 작성해 서명작업에 들어간다든지 하는 것은 결국 미국의 대 테러 세계전략에 「반대」와 「투쟁」방식으로 나가겠다는 발상인데, 이것이 과연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제일 책무는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국가를 보위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행동 방식은 국민을 불안케 하고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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