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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노역 北탄광지대, 국군포로 한때 1000명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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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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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국군 포로들 증언]

하루에 12시간씩 석탄 캐… 임금은 한집당 하루 옥수수 50g
몸 아파 호소하면 '꾀병' 외면



TV조선 화면 캡처


탈북 후 한국에 정착한 국군 포로들은 함경북도 탄광 3곳에만 국군 포로 117명이 생존해 있다는 보도〈본지 4월 29일자 A1면〉를 접한 후 "북한에 있을 때는 감시 때문에 고향 이야기를 제대로 못 했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군 포로들의 증언에 따르면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연합군 포로와 달리 한국군 출신들은 곧장 함북 일대 탄광으로 배치돼 노역(勞役)을 했다고 한다.

국군 포로 출신으로 탈북한 A씨는 "1953년 휴전이 되고 북한군이 '당신들은 동포에게 죄를 지었으니 죗값을 치르라'고 말했다"며 "공포 분위기에서 남한으로 가겠다는 의사를 밝힐 수 없었다. 그런 의사를 밝힌 일부 군인은 행방불명됐다"고 말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탄광 근로자로 배치된 이들은 하루 2교대로 12시간씩 탄광 일을 했다. 탄광에서 일했던 국군 포로 B씨는 "많을 때는 이 일대 탄광에서만 1100~1200명의 국군 포로가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국군 포로들은 대부분 비슷한 지역에 집을 받아 모여 살았다고 한다. 탄광 주변에 주택난이 심각해 한 집에 두 가족이 나눠 살기도 했다. 월급은 옥수수로 지급하는데, 한 가정에 하루 50g꼴이었다. 옥수수로는 죽을 쑤어 먹었다. 그나마 안 나올 때도 있었다. A씨는 "최대 열흘까지 굶어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탄광 일대에서 일했던 국군 포로들이 가장 괴로웠던 일은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국군 포로 1명당 북한에서 1~2명의 감시 요원이 붙는 데다 같은 국군 포로 출신이라고 해도 밀고자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의료 상황도 열악했다. B씨는 "몸을 너무 아파하는 사람에게 탄광 관리자가 '꾀병을 부린다'고 했는데 나중에 암(癌)으로 죽었다. 이런 사람을 2명 봤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 포로를 500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재까지 한국으로 돌아온 국군 포로는 80명이며 이 중 51명이 생존해 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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