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통일 성명 싸고 오락가락
靑 "대화 제의 아니다" 했다가 "제의한 것 맞다" 뒤늦게 정정
위기상황 점점 심각해지자 '북한 달래기' 고민하는 듯
北은 사실상 대화제의 거부… 우리정부만 얕잡아 보일 수도




정부는 11일 류길재<사진> 통일부 장관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북한을 향해 대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불과 이틀전까지만 해도 위협을 고조시키는 북한과는 대화할 때가 아니라던 정부가 태도를 바꾼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의 명분이 뚜렷치 않은 상황에서 정부 내 혼선이 빚어졌다. 또 북한이 이날 저녁 또다시 "불바다" 운운함으로써 우리 정부의 스타일을 구기게 됐다.

◇통일부·청와대 한때 혼선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오후 "개성공단 정상화는 대화를 통해 해결돼야 한다"며 "북측이 제기하기를 원하는 사안들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북한 당국은 대화의 장(場)으로 나오기를 바란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류 장관은 다만 "대화 제의는 아니다"고 했고, 청와대 관계자도 "(류장관이) 대화를 제의했다기보다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대화를 통해서 풀어야 한다는 정부의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천명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저녁 새누리당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과의 대화에 비중을 두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직전에 "대화를 제의했다기보다는…"이라고 말했던 청와대 관계자는 "그 부분을 삭제해달라"고 했고, 또 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북 대화 제의를 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정부 노선변경 왜?

정부의 입장이 갑자기 바뀐 이유는 분명치 않다. 류 장관은 8일 국회에서 "대화를 제안해도 (북이) 받을지 의문"이라고 했고, 다음 날 통일부 당국자는 "이런 현실에서 대화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식료품 반입이라도 허용해달라는 식의 구차한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이런 대북 기조가 11일 달라진 배경과 관련, 정부 관계자는 "더 이상 상황 악화는 안 된다는 (정부 수뇌부의) 판단 때문으로 안다"며 "김일성 출생일(4월 15일)인 태양절을 기점으로 현재의 긴장상태가 해소되기를 기대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청와대와 경제 관료들 사이엔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 관리에 실패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이탈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란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 지도부와 첫 만찬 회동(12일)을 앞둔 박근혜 대통령이 나름의 성의 표시를 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긴장 완화 차원에서 북한과 대화하기를 요구해온 야당과 좋은 분위기 속에 만나려면 조금 유연해질 필요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정부와 북한 간에 모종의 물밑 접촉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대북 기조만 훼손될 수도

하지만 북한의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은 이날 저녁 류 장관의 성명이 발표된 지 2시간 후 "우리 혁명 무력의 위력(강력)한 타격 수단들은 이제 단추만 누르면 발사되게 돼 있고 발사되면 원수들의 아성이 온통 불바다가 될 판"이라며 "전쟁은 이제 시간문제"라고 밝혔다. 조평통은 "무자비한 보복성전의 화살표는 이미 미국 본토와 태평양 상의 미군기지를 비롯해 미군의 둥지를 틀고있는 모든 거점들에 그어져 있다"고 했다. 조평통의 이 같은 입장 발표는 정부의 대화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때문에 북한의 일방적 협박과 도발로 조성된 위기를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우리가 먼저 '대화'를 거론한 것은 성급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북한의 심리전에 정부가 넘어갔다는 비판도 나온다. 북한이 예상대로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쏘며 한반도 위기 지수를 한층 더 끌어올릴 경우 '어정쩡한 대화'를 언급한 우리 정부만 우습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가 그동안 차분하고 단호하게 북한에 대응해왔는데 섣불리 대화를 제의함으로써 자칫 얕잡아 보이게 될 일을 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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