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근로자 철수 선언]
南北관계 위기지수 최대치로 끌어올려 朴정부 대응 시험
북한 근로자 월급 실은 은행 수송차의 개성 진입도 막아
北, 투자자 권익 보호하는 경협합의서·개성공단법 위반
잠재적인 해외 투자자들에게 최악의 메시지 보낸 셈


북한이 개성공단 폐쇄를 언급(3월 30일)한 지 9일 만에 협박을 행동으로 옮겼다. 개성공단은 2004년 12월 첫 가동 이후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2010년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도에 포탄을 퍼부을 때도 운영돼 '남북 간 최후의 접촉선' 역할을 해왔다. 이날 북한의 조치는 군사 공격을 제외하면 역대 최고 수위의 도발이었다.

◇달러도 마다하며 南 압박

당초 정부 안팎에선 "북한이 노동자 임금으로 연간 챙기는 8700만달러 때문에라도 개성공단 포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날 노동자 임금을 실은 현금 수송 차량의 진입도 막았다고 우리은행 관계자가 전했다. 이로써 북한 노동자 5만4000여명의 한 달치 봉급 약 800만달러가 제때(10일) 지급되기 어려워졌다.


北에 화물차 못 들어가자 승용차로 제품 수송… 한 개성공단 입주 업체 차량이 8일 오후 전선(電線)으로 보이는 물건을 트렁크에 넘칠 정도로 실은 채 출입사무소 남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북한이 남측 인원의 개성공단 진입을 막아 화물차 물류가 중단되자, 진입 제한 조치 이전에 개성에 가지고 갔던 개인 승용차에 물건을 싣고 나오는 경우가 있다.


국립외교원 윤덕민 교수는 "박근혜 정부 초반에 기(氣)를 죽여 길들이기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우리가 어떻게 나올지를 시험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북한이 개성공단의 "존폐를 검토하겠다"고 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완전 폐쇄' 카드를 한 장 남겨놓은 채 한국 내부에서 '남북 대화론', '대북 특사 파견론' 등 북한을 달래자는 여론이 조성되기를 기다리겠다는 뜻이 담겼다는 분석이다. '남남(南南) 갈등 유도 전략'을 병행하는 것이다.

◇경협합의서 전면 위반

남북은 개성공단 등 경제 협력 사업과 관련, 2003년 4대 경협합의서를 체결했다. 이 중 투자보장합의서는 "상대방 투자자의 투자 자산을 보호하고 투자 및 기업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인원들의 출입·체류·이동 등과 관련된 문제를 호의적으로 처리한다"고 규정했다. 2002년 북한 스스로 만든 개성공단지구법 7조도 "공업지구에서는 투자자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한다"고 돼 있다. 서강대 김영수 교수는 "오늘 북한의 조치는 경협 합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고 했고, 고려대 유호열 교수(한국정치학회장)도 "북의 행태는 법적 합의와 신뢰를 무시한 초법적 처사"라고 했다.

◇모순 덩어리 경제·핵 병진 정책

최근 북한은 한·미를 향해 '핵 선제 타격' 위협, 영변 원자로 재가동 선언 등 연일 '핵 공갈'을 쏟아내며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도 한편에선 인민 생활과 경제를 부쩍 강조해왔다.



이런 북한의 모순된 분위기는 지난달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 회의에서 채택된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竝進) 노선'에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북은 이날 조치로 "완전한 고립을 택했다"(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수석 박사)는 지적이다. 이화여대 조동호 교수도 "북한이 '장군님(김정일)의 북남 협력 사업'이라며 애지중지해온 개성공단까지 닫는 마당에 다른 외자 유치가 되겠느냐"며 "경제는 다른 말로 신용인데 믿을 수 없는 나라에 투자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안보통일연구부장은 "핵과 경제를 병행하겠다지만 경제 활성화는 외부 투자가 있어야 가능하다"며 "중국·이집트 등 북한에 투자한 다른 국가와 잠재적인 해외 투자자들에게 최악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완전 폐쇄할지 지금으로선 불확실하다. 윤덕민 교수는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을 통해 연간 8700만달러의 수입을 챙기는 북한이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영수 교수는 "과거 금강산 관광지구처럼 남한 직원 퇴출, 재산 몰수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갈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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