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 차량출입구. 이날도 북한으로 향하는 운송차량이 없어 한산한 분위기였다


8일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 지난 3일 북한이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진입을 차단하겠다고 통보한 지 엿새째인 이날 사무소는 취재진과 이곳을 관할하는 1사단 소속 군인, 사무소 관리자 등만이 분주하게 움직인 채 적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오전 8시가 넘자 옥성석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을 비롯한 협회 관계자들과 개성공단 근로자 10여명이 출입사무소를 찾았지만 이렇다 할 소득없이 사무소 안에서 서성이다 결국 발길을 돌렸다. 사무소 밖에서 대기 중이던 운송트럭들도 오전 10시를 넘어 대부분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옥 부회장은 “이미 조업중단이란 말조차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모든 입주기업들이 조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식자재도 바닥을 드러내고 연료 공급도 끊겨 근로자들의 고통이 크다”고 전한 후 자리를 떴다.


출입사무소 주변에서 대기하던 운송차량들은 오전 10시를 넘자 되돌아 갔다.


오후 2시가 되자 북한에서 귀환하는 이날의 첫 입경자 3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 상황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출입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지난 주 귀환한 일부 근로자들이 비교적 자세히 개성공단의 상황을 설명한 것과 대조적으로 이날 돌아온 근로자들은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먼저 귀환한 개성공단 근로자 김모씨는 “원자재와 먹을거리 등이 많이 부족해 어려움이 크지만 다음 주 정도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며 “하루빨리 통행금지 조치가 풀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김양건 북한 노동당 대남비서가 개성공단을 찾아 현장점검을 했다는 소식에 대해서는 “김 비서를 본 적도 없고 별다른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다”고 짧게 대답한 후 서둘러 차를 타고 사무소를 빠져나갔다.


한 근로자가 취재진의 인터뷰에 답하고 있다. 그는 "원자재와 먹거리 등이 부족해 남은 근로자들의 고충이 크다"고 전했다.


이어 3시가 되자 박창훈 삼덕스타필드 고문을 비롯한 개성공단 근로자 2명이 추가 귀환했다. 박 고문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제하길 바란다는 요청을 받아 자세히 말을 하기는 어렵다”고 양해를 구한 뒤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식자재와 연료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박 고문은 “식자재가 부족한 상황이지만 아직 여유가 있는 회사들과 공유해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며 “연료나 기타 물자도 부족해 고충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근로자들은 대부분 정상 출근해 조업을 진행했다”며 “북한 측의 움직임도 통행금지 이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김양건 대남비서의 방문 소식에 대해서는 박 고문 역시 “특별한 소식을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개성공단기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귀환한 근로자들은 불필요한 말이 와전될 것을 우려해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꺼린 것으로 본다”며 “개성공단 기업들은 언론 보도로 현재의 긴장 국면이 더욱 높아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개성공단을 찾아 현장점검을 하고 돌아간 것으로 알려진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는 이후 담화를 통해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들을 전원 철수하고 사업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김 비서는 "남조선 당국과 군부가 우리의 존엄을 모독해 개성공업지구 사업을 잠정 중단하고 존폐 여부를 검토하기로 결정했다"며 "공업지구에서 근무하던 북한 종업원들을 전부 철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가뜩이나 원자재와 먹거리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북한 당국의 갑작스런 성명이 나온 후 망연자실한 분위기를 보였다. 개성공단 관련기업의 한 관계자는 "생산인력이 없는 공단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사실상 폐쇄로 가는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사무소를 관리하기 위해 파견나온 1사단과 UN 소속 군인들은 비교적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익명의 한 장교는 “군은 별다른 동요를 하지 않은 채 차분히 북한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평소와 다름없이 복무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