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3일째 개성공단 통제


"불과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공장을 지척에 두고 가지 못하는 심정이 참담합니다."

옥성석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은 8일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국사무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하소연했다.

옥 부회장은 "모든 먹을 것이 부족해 10일이면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라며 "지난주까지는 어떻게 아껴먹으면서 버텼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토로했다.

남북관계 '최후 보루'인 개성공단이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2009년 3월 이후 4년 만이다. 북한이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는 길을 차단한 지 엿새째에 접어들었고, 갈수록 조업 중단에 대한 우려는 확산되고 있다. 생산에 필요한 원부자재 뿐 아니라 현지 체류인원이 먹을 식자재까지 부족해 결국엔 철수할 수 밖에 없는 한계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다.

이미 식재료가 바닥을 보인지 사흘이 됐다는 업체도 있었다. 이 기업 대표는 "불행 중 다행으로 원자재는 자체 공급하고 있어 며칠은 버틸 수 있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겨우 유지해온 납품 계약이 끊길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는 "전쟁이 나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는 해외 바이어들도 늘고 있다"며 "정치적 리스크 때문에 납품 계약이 끊기면 우리는 어디 가서 호소해야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이날 일부 의류업체들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에게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제일모직과 LG패션, 코오롱FnC 등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추이를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양도 많지 않아 유통상 문제도 없다고 주장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 중 5개 업체와 거래 중인 형지는 "출경 금지 등으로 업무에 차질이 빚어진 것은 사실"이라며 "변수요인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로선 협력업체와 거래와 관련된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물량을 의류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는 한 업체의 대표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정치적 관계에 의한 문제"라며 "동반성장 차원에서 납품 기일을 조금만 연기해 줄 순 없느냐"고 요청하기도 했다.

개성공단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공단 생산액(4억6950만 달러)의 약 80%는 의류봉제업체들이 차지한다. 이는 대기업이 납품계약을 해지할 경우 공단의 존립마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일부 제품을 맡기고 있는 쿠쿠전자 측도 딱히 손 쓸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품목이 제한적이라 아직은 피해 상황을 집계하고 있다"며 "매우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일단은 실질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대화에서는 상대방의 자세가 중요하다"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한 북한의 부당한 조치에 대해 북측에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개성공단 입주 피해 기업에 대한 지원 대책은 마련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선의의 피해를 입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통행 제한으로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것은 입주업체 탓이 아니다"며 "중소기업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속이 타는 건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이다. 정부의 말 뿐인 대책에 분통이 터질 지경이라는 것.

이와 관련 개성공단기업협회는 9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공단 통행 정상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일주일 새 벌써 4번째다.

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대답만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당장 통행제한을 정상화하진 못하더라도 공장가동 중단은 막아야하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소한의 물류통행이라도 허용되도록 조치를 취해달라는 얘기다.

개성공단에는 현재 공장 가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만 남아 있다. '사실상 폐쇄'라는 회색빛 전망 앞에 남북 간 대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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