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호
/2000년 입국·자영업

북한에 있을 때 내 직업은 운전수였다. 군대에서 면허를 따서 운전을 하다가 제대 후에는 고향인 함북 온성군에서 삼봉철도관리국 철길대에 배치되었다. 북한에서는 운전수는 면허 따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여서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이다. 어떤 집에서 딸을 "면허" 있는 남자라고 해서 시집보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운전면허"가 아니라 "의사면허"더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철길대 소속 다른 대원들의 업무는 허구한 날 탈이 생기는 철길을 보수하고, 사고가 나면 골치 아픈 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운전수는 나은 편이었다. 아직도 일제 때 건설된 것을 그대로 쓰는 철길은 무척 노후된 상태다. 침목은 나무에 기름을 충분히 먹여 몇 번이고 끓여 만들어야 하는데 먹일 기름이 모자라니 생나무를 베어다 말려 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사고가 잦은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가 몰았던 화물자동차 ‘승리58’도 90년대 들어서는 연료가 없어서 서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나마 누구네 집에 결혼식이 있다거나 김장철이 돼 수백 포기 김장을 하게 되면 연료를 구해와 운전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차피 세워두는 차니 그럴 때면 대민(대민) 봉사에 나서는 것이다.

운전수는 알려져 있는 것보다는 훨씬 피곤한 직업이다. 오죽했으면 『운전수가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느니 전봇대에 꽃이 피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낫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길이 나쁘고, 고장이 자주 나니 운전수 성격이 온전할 리가 없다. 게다가 장거리를 뛰자면 소지해 가야 하는 증명서가 일곱~여덟 개는 족히 된다. 일일이 통과하고 검사를 맡기도 피곤하고, 흠이라도 잡히게 되면 뇌물을 써야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태워달라고 성화를 부리는 사람들을 뿌리치기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가장 큰 골치는 차의 부속품을 잃어버리는 경우다. 북한에서 차는 국가가 각 기관에 내려준 이른바 국가재산이므로 훼손되면 운전수가 책임을 지게 돼 있다. 없어지거나 고장난 부속을 구하자면 고생이 말이 아니다. 바깥에 세워둔 차가 이러저리 뜯기는 것은 부속을 잃어버린 운전수가 보충하기 위해 뜯어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밤새 주차할 때는 후사경 등 해체 가능한 부속들은 모두 뜯어 집에 갖고 들어간다.

그렇다고 바퀴까지 떼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루는 차를 세워두고 아침에 나가보니 바퀴가 몽땅 없어졌다. 어쩌겠는가? 친구들에게 여차저차 사정을 말하고 함께 한밤중에 외화벌이사업소 담장을 뛰어넘었다. 녹슨 바퀴를 풀어내자면 스스슥거리는 소리가 야음을 깬다. 물을 축여서 용케 소리를 죽이고 풀어내 갖고 와서 감쪽같이 내것으로 만들었다. 어차피 국가재산을 훔쳐 국가재산을 보전하는 식이니 죄의식 같은 것은 없다. 심지어 들켜 잡혀 들어간다 해도 흔히 정상이 참작되는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유쾌할 것은 조금도 없는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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