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 사무실에 한 지식인이 찾아왔다. 큰 키에 멋지게 생긴 사나이로 한국의 한 대학에서 무역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또한 그가 속한 세계교회평의회의) 가장 큰 관심은 어떻게 하면 북한을 자유주의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도록 할 것인가였다.

그도 지금 북한이 처해 있는 어려움을 알고 있긴 하지만, 더 나쁜 상황은 북한이 서울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마치 동독이 서독에 흡수된 것과 같이 말이다.

동독에 대해서라면 나도 조금 알고 있다. 그곳 사람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들 가운데에서 오해와 비탄, 심지어 옛시절에 대한 향수까지도 발견할 수 있었음을 솔직히 말해야겠다. 그들의 이런 오해와 비탄은 최근 베를린 선거에서 동독공산당(SED)의 후계자들에게 25%이상의 표를 던짐으로써 정치적으로도 표시됐다.

물론 이들 후계자들은 20년 전의 동독 공산당 지도부와는 다르다. 그러나 이들 중 세 사람은 즉각 베를린 주정부에 참여하게 됐다. 그들은 여기서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동료들과 열심히 일하며 베를린과 주변지역의 경제적·사회적 발전을 꾀하게 될 것이다.

이 정도가 남북한이 무슨 짓을 해서라도 피해야 할 끔찍한 상황인가. 조선노동당의 후신인 '진보당'(이름이야 무엇이 됐든)이 남한출신의 주요 정당들과 손잡고 평양과 주변지역을 새롭게 민주적으로 통일된 '코리아'에 융합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마땅히 환호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분명 이데올로기적 맹목성에 주의해야 한다. 비록 어느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제약과 감시가 있다 할지라도 자유주의가 경제적 성공을 불러온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자유주의가 북한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는 빠르고도 바람직한 변화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60년간의 공산통치는 강한 인식과 관습을 남길 것이다. 상당수 북한 주민들은 혼란을 느낄 것이고, 남한의 정당들은 그들을 잘 대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정치적 지혜를 동원해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나는 강경한 반공주의자이지만 김정일 독재를 거부하는 한에서는 사회주의를 주창하는 정당이라 할지라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이 정도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지켜져야 마땅한 것이다.
/프랑스 북한인권위원회 위원장·'사회사평론'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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