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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중앙아 고려인과 재일동포 강상중 동경대교수 “유랑시대… 국경 초월한 코리안 네트워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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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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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중순, NHK교육TV 특집 ‘유전―중앙아시아 조선족의 20세기’라는 3회 연속 프로그램에 논평자로 출연할 기회가 있었다.

2차대전 중 스탈린에 의해 제2의 고향 연해주에서 수천km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조선족 100년의 역사는, 구소련붕괴 후 다시 연해주로 신천지를 찾아 떠나려는 3세대 가족의 초상을 보여주며 끝을 맺었다. 비극적인 역사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 바로 ‘유전’(유전)이야말로 그들 ‘고려인’의 20세기 그것이었다.

조선말기의 기근과 가혹한 일본의 식민통치, 독-소전과 스탈린의 숙청 바람, 북한에 대한 지원과 6·25, 소련 북한의 관계악화와 흐루시초프시대, 그리고 소련의 붕괴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독립…. 유랑민은 이향을 고향으로 삼은 것도 잠시뿐, 유전을 거듭하면서 이제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비극이 시작된 땅이다. 하지만 이번엔 강제가 아닌 자유의지로 그들은 지평선을 넘어 떠나기를 결심했다. 연해주에 안식의 장소가 기약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왜 그들은 이동하는가, 프로그램을 보며 줄곧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의문점은 그것이었다.

10년전이었더라면 일반 시청자들은 이 프로를 단지 비운의 민족과 가족의 기억으로만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보고있는 자신의 일상은 반석위에 안정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유전’가운데 이동하는 조선족의 모습에서 무언가 혼(혼)의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공감을 맛보았던 시청자가 많았던 것은 아닌지.

거기에는 풍요로움의 정도가 다르겠지만, 내 말로 치면, ‘스톡(stock) 환상’이 벗겨져 ‘유전’을 할 수 밖에 없게 돼 가는 사람들의 자유와 불안이 교차되고 있는 듯이 생각되었다. 토지와 공장, 숙련노동력의 집적과 국가 등, ‘스톡’으로서의 아이덴티티와 안정의 기반이었던 것이 융해되어 유동화가 불가피해지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끝에서 우리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목적지 없는 미래로의 자유이며 불확실성에 다름 아니다. 초점을 바꿔서 재일한국, 조선인의 경우는 어떤가. 해방후 반세기의 역사는, 한마디로 하면 일본의 고도성장이 만들어낸 방대한 스톡의 주변부에서, 그 일부를 얻어내면서 일본사회에 한없이 동화되어 가는 역사였다. 그것은 일본사회의 ‘2류 혹은 3류시민’으로서 ‘스톡 환상’의 일부를 공유하며, 종속적인 위치에서 가능한 한 그 ‘스톡’을 부풀려 가는 역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스톡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의 경제와 사회속에서는, 재일한국인은 결코 중심적이고 각광을 받는 존재가 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태가 크게 변하고 있다. 이 ‘잃어버린 10년’과 함께 ‘스톡환상’은 맥없이 무너지고, 사회의 분극화가 진행됨과 동시에 이른바 글로벌화라고 하는 끝없는 ‘플로(flow)화현상’이 일본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자산과 소득, 직업위신과 교육 등, 계층적 양극화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또한 방대한 토지와 자본, 안정된 노동력과 기술을 투하함으로써 고도의 생산력을 창출하는 경제시스템은, 생산성과 효율성의 면에서라도 후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스톡환상’의 종말에 다름 아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스톡에 달라 붙어 살아온 사람들이 거기서 떨어져 나가게 되면서 ‘유전’을 하는 것 이외에 별 도리가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지난날 ‘유전’이라는 운명에 놓여진 사람들은 재일한국, 조선인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젊은층이 ‘정규’ 노동력으로서의 ‘스톡’으로 인정 받지 못하고, ‘프리터’(free arbeiter의 일본식 합성어)라는 이름의 자유로운 ‘일용노동자’가 되어 쌓여지고 있다.

재일한국, 조선인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스톡사회’속에서 종속적이기는 하나 이제 겨우 안정된 지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그때, 이번에는 그것이 붕괴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즉, 재일한국, 조선인이 평균적인 ‘일본인’에 가깝게 다가갔을 때, 이번에 ‘일본인’의 ‘재일화’(재일화)가 시작되려 하는 것이다. 이 기묘한 역사의 패러독스속에, 도대체 어떠한 아이덴티티와 삶의 방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20세기가 막을 내리는 지금에 와서 확실해진 것은, 재일한국, 조선인에게 있어 평균적인 보통의 중산계급으로서의 ‘일본인’이 되는 것이 이제는 이상(이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유전’이 재일한국,조선인의 역사의 시작이었다면, 재일한국, 조선인은 과감히 그 ‘유전’을 살아가며, 이른바 ‘플로경제’와 그 네트워크 속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전에 나는 중앙아시아로부터 중국, 동북부, 한반도, 그리고 일본에 산재하는 한국계 사람들의 연결을 ‘코리안-네트워크’라고 부른 바 있다.

냉전시대에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할것 없이 자신들의 호스트사회에서 그 스톡을 획득하는 것이 살아가는 가치를 이루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국가단위의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냉전의 의미는 사실상 없어지고, 민족적인 아이덴티티가 의식됨과 동시에 국경을 초월한 수평적인 관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재일한국, 조선인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는, 그러한 코리안-네트워크 안에서 자신들의 살아가는 가능성을 보다 확대하는 것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유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유전’의 역사야말로 새로운 세기의 ‘프런트’라는 것을 자각하며 사는 아이덴티티이다. 이런 의미에서 중앙아시아 조선족‘유전’의 20세기는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다. /강상중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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