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를 즈음한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사업이 마침내 실현단계에 들어갔다. 남북 적십자회담 합의에 따라 양측 이산가족 방문단 후보자 명단이 지난 16일에 교환되었고, 남한에서는 북 측이 보내온 후보자 명단을 곧바로 공개함으로써 ‘찾을 가족’ 확인이 쾌속도로 진행된 것이다.

북한에서는 과연 남 측에서 보낸 후보자 명단의 ‘찾을 가족’ 확인과 선정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아마도 오는 26일 그쪽에서 보내올 확정자 명단을 면밀히 살펴보면 여러 가지 궁금증의 편린(편린)이 풀릴 것이다.

아무튼 이산가족 방문단 후보자 명단의 교환만으로도 ‘6·15 공동선언’의 첫 성과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남북관계의 불가측성(불가측성) 때문에 아직은 덜익은 풋과일이라 하더라도 오는 8·15에는 반드시 농숙한 열매가 되어 방문단원들과 가족들이 눈물 속에 큰 기쁨을 나누게 되기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이번에 북 측에서 온 후보자 명단과 남쪽 가족들의 사연들이 알려지면서, 또한 남 측에서 후보자를 선정하는 과정에 드러난 곤혹스러운 일들을 함께 감안해 볼 때, 이산가족 문제 해법에는 되짚어 봐야 할 일이 적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도 남·북한 당국이 이산가족 문제를 정치 논리의 기속(기속)에서 풀어 놓는 일이다. 이번에 북 측이 보내 온 후보자 명단을 보면 이산가족 고통 해소라는 인도적 대의는 분명히 배어 있으나, 거기에다 체제경쟁과 선전효과를 함께 노리는 ‘덧칠 행위’가 있음을 간파하게 된다. 후보자 대부분이 북한체제에서 햇볕 받는 ‘월북자’(혹은 ‘납북’ 후 체제순응 성공자)이며, 이는 남한 거주 가족들의 신상명세까지 부연한 사실 등이 뒷받침해 준다.

그와 반대로 남한에서는 컴퓨터에 의한 추출 방식으로 정치적 작위는 배제되었으므로 앞으로 최종 확정되는 방문자들의 구성은 (속된 뜻은 아니지만) 장삼이사(장삼이사)가 될 공산이 크다.

이 같은 대조적 현상은 개방사회인 남한과 통제사회인 북한의 체제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장차 방문단 교환이 반복되고 면회소 설치 운영이 실현되는 경우에도 북 측이 계속 정치논리의 ‘덧칠’로 나온다면, 이산가족 방문 교환 사업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자칫하면 중단사태까지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번의 후보자 명단 공개로 ‘월북자 가족’이 노출된 부대(부대)효과와 함께 거기에서 비롯되는 국민의식의 성숙화도 하나의 과제가 된다.

우리가 진실로 이산가족 문제를 인륜과 인도주의적 정신으로 본다면, 월북자 가족이나 월남자 가족이나 근본적으로 동일한 사람들로 모두 냉전 이데올로기 틈바구니에서 생겨난 희생자들인 것이다. 더구나 월남자들의 재북 가족들 처지를 감안할 때 역지사지(역지사지)의 사고방식이 절실하다. 월북자들의 재남 가족들이 조금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재북 이산가족의 처지 개선에 도움이 될 것임을 기대해야 한다.

이산가족 문제 해법에서 재삼 실감하는 것은 방문 후보자 명단 교환을 수십만명의 이산가족들이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심지어는 질시, 냉소, 분노, 체념에 젖어 있다는 사실이다.

관계기관에 신청한 이산가족 방문 희망자 7만6693명 중에서 100명만이 방문하게 된다면 767분의 1이 수혜자가 된다. 이것을 더 실감나게 표시하면 ‘767-1=766’이라는 수식(수식)이 된다. 1명의 기쁨 뒤에는 766명이 한숨과 눈물에 젖어 있는 셈이다.

‘767-1=766’의 비극을 극복하려면 이벤트식의 방문단 교환이나 제한된 인원의 면회소 설치 운영에 급급하지 말고, 이산가족 전체 희망자의 생사확인과 주소확인을 선행하고 서신교환을 성취한 다음 제3단계로 방문 면회를 실현시키는 것이 온당한 절차이다.

이산가족 문제 해법은 ‘767-1=766’이라는 기막힌 수식에 잠겨 있는 뜻을 해독하는 데서 실마리를 찾아야 함을 다시 강조해 둔다.

/ 이 경 남 이산가족상봉추진회장·전 동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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