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수공장 폭발당시 강계시의 모든 건물 유리창이 깨질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다고 한다. 사진은 북한 대외홍보용 잡지 '금수강산'(2000.4)에 실린 강계시의 모습.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대형 사건사고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강계 군수공장 폭발사고는 주민들 사이에 사상 최악으로 각인돼 있다. 사망자만 최소한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소문났었다. 이 사고는 90년 초겨울 자강도 강계 26군수품공장에서 일어났다.

강계군수품공장은 소형트랙터공장으로 위장돼 있지만 실제로는 미사일을 생산하는 북한 최대의 군수공장이다. 사고의 발단은 경비병들의 부주의로 시작됐다고 한다. 사고 당시 강계에 살다 탈북한 김기원(가명ㆍ57)씨는 "사고가 나자 사람들은 처음에는 적들(남한의 안기부나 미국)의 소행으로 여겼으나 사고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전말이 주민들에게 알려졌다"고 말했다.

당시 공장에는 이란 등에 수출하기 위해 한달 동안 생산한 미사일, 방사포탄 등이 수천 발 쌓여 있었다. 경비병들이 추위를 피하려고 불을 피웠는데 불꽃이 미사일을 싸고 있던 기름용지에 튀었고 곧장 나무상자로 불길이 옮겨 붙으면서 걷잡을 수 없는 대형 화재로 번졌다.

이어 폭탄이 폭발하기 시작했는데 경비병과 함께 있던 한 처녀가 급히 소방대에 알리려 달려갔고 이어 인민보안성 요원들이 결사대를 조직해 지하입구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았다.

지하입구는 두꺼운 철문이 이중으로 설치돼 있었지만 자동장치가 작동되지 않아 닫히지 않았다. 보안원들이 몸으로 불길을 막으며 다음 문을 닫는데 사력을 다했다. 우여곡절 끝에 두번째 철문을 닫는데 성공해 지하로는 불길이 들어가지 않았다.

바깥 폭발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주변 민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강계에서 400리 떨어진 희천에 살았던 한 탈북자는 "강계쪽 하늘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게 보였다"고 말했다. 강계시의 웬만한 집의 유리창문은 모두 깨졌다. 주민들이 놀라 집에서 뛰쳐 나와 거리는 아수라장이 됐다. 집집마다 설치돼 있는 유선방송인 제3방송에서는 "전쟁이 아니라 사고니 침착할 것"을 당부했지만 놀란 주민들을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고 수습후 밀폐시켰던 지하 직장을 열자 300여 명의 기술자와 노동자들의 시체가 발견됐다고 한다. 여자들이 가운데 모여 있었고, 남자들이 둘러싼 모습이었는데 모두 유서를 써 놓았다고 한다. 문이 막힌 상태에서 질식해 사망한 것이었다. 이들 외에도 바깥의 폭발로 사망한 사람이 1000 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직장의 사망자들에게는 전원 열사증이 수여됐고 미사일 공장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북한당국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지만 워낙 큰 사고인데다 피해자가 많아 사고 소문은 북한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갔다. 기자도 사고가 나고 얼마 안돼 함흥에서 사고 소식을 들었다.
/강철환기자nkch@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