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주한 미군의 젊은 장교 한 사람이 신문사로 기자를 찾아왔다. 미국에서 발간된 기자의 북한 강제수용소 체험기인 '평양의 어항'을 단숨에 읽고 근무지인 경북 왜관에서 서울까지 기자를 만나기 위해 달려왔다는 것이다.

그는 작년 9·11 미국테러로 가족 중 두 사람을 잃고 장례식에 참석하기를 원했지만 미군 당국의 허락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주말마다 부대앞에서 '미군철수'를 외치는 한국 젊은이들을 보면서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가"하는 심각한 정체성 갈등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부대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을 통해 북한의 강제수용소 실상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자신이 한국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됐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그는 기자와의 만남이 자신의 생애에서 진정코 '드라마틱한' 순간이 됐다며 거듭 감동을 표시해 기자를 몸둘 바 모르게 만들었다. 나이를 물었더니 "당신이 수용소에 들어갔던 1977년에 태어났다"고 했다.

"내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깨달았어요. 미국인도 한국인도 그것을 잘 몰라요.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당신과 이 책 이야기를 해 주겠어요."

그는 북한사람들이 겪고 있는 반인륜적인 인권탄압에 분노했고 그들의 고통을 가슴 아파했다. 북한에 남아 있는 내 동생의 이름도 자연스럽게 들먹이며 걱정해 주었다.

기자는 북한에서 뼛속깊이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 미국인은 승냥이며 인간 도살자들이라고 배웠다. 북한에서는 "미국만 없으면 조국통일은 식은 죽먹기"라고 강조하고 또 그렇게 믿으면서 자랐다.

바로 그 미국의 젊은 군인이 북한 주민의 고통에 가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기자는 그에게서 필자와 독자 관계 이상의 어떤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분노는 정의로운 것이었고, 그것은 기자가 북한을 탈출해 나오고 10년 세월이 흐르도록 한시도 잊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감정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북한에 남아 있는 기자의 가족을 걱정해 준 것처럼, 기자 역시 9·11테러로 무고한 가족을 잃은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의 이름은 시런 기어리, 계급은 소위로 곧 중위로 진급할 예정이라고 했다.
/ 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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