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8일부터 10일까지 일본 동경에서 열리는 북한인권 심포지엄에는 벨기에,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인들도 여럿 참가해 다각도에서 이 문제를 검토하게 된다. 그 중에는 납치와 억류에 관한 이슈도 들어있어 한국과 일본의 관심을 심히 끌만하다. 아마도 일본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북한의 조선적십자회에 납북자 재조사를 요구하는 서명활동에는 유럽의 인권운동가들도 동참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인들이 한 때 북한의 모델이자 보호자 역할을 했던 소련으로부터 이런 유형의 인권유린을 당했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1930년대에는 프랑스에 살고 있는 러시아 난민들이 납치된 예가 있다. 밀러 장군과 쿠티예포프 장군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1940년대, 2차대전 직후 몇 명의 프랑스 군인들이 독일의 베를린 등지에서, 또는 오스트리아에서 소련에 납치됐다.

나는 이들 피랍자들 중 베르나르 제르메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1948년 오스트리아인 여자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소련 점령지에서 스파이 혐의로 소련군에 의해 구금됐다. 그는 1955년까지 북극해 근처에 있는 포르쿠타 강제수용소에 억류된다. 단지 「노동자천국」에서 일하며 살고 싶어 건너간 유럽인들, 스탈린의 보호아래 그들의 옛 가계(예전에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김일성의 북송 요구에 응했 듯)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러시아인들이나 아르메니아들, 모스크바로 소환돼 간 서유럽 공산주의자 등등도 그랬다.

그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또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내 오랜 친구 자크 로시는 1937년부터 56년까지 19년간 수용소군도에서 보냈다. 그의 훌륭한 저서 「수용소 핸드북」은 일어 영어 프랑스어로 번역됐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학생이면 누구든 베갯머리에 두고 읽을 만한 책이다.

지금 북한이 그렇듯이 소련도 당시 납치나 억류같은 것은 없고, 제국주의자들의 모략이라며 비난했다. 70년 간 지속된 소련체제가 붕괴되고 문서보관소가 공개됐을 때 비로소 러시아의 연구자들도 사실을 인정했다. 북한이 자행한 납치와 구금에 관한 진실을 알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 프랑스 북한인권위원회 위원장, 「사회사평론」편집장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