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걸린 실경산수화 속에서 아침 저녁으로 만나온 오빠였어요. 이제 꿈이나 그림 속에서가 아닌 실제의 오빠를 만나게 된다니…. ”

북한에서 오빠 정창모씨(68·인민예술가)가 자신들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은 정춘희(61·경기 군포시 산본동 수리한양아파트)·남희(53·전주시 효자동 남양맨션)씨 자매는 17일 “생존사실은 10여년 전부터 알아왔으나 막상 만나게 된다는 설렘에 밤잠을 못이뤘다”고 말했다.

오빠 창모씨는 서울과 광주에서 다섯 차례나 전시회가 열릴 정도의 조선화의 거장. 자매는 13년 전 LA 한인신문에 실린 오빠 관련 기사를 친지로부터 전해 받고, 오빠의 생존사실과 북한에서 활동상도 알고 있었다.

떨어져 사는 자매는 서로 오빠에 관한 소식을 듣는 대로 전화기를 들곤 했다. 전람회장인 서울 예술의전당이나 광주 문화예술회관 등엔 두 손을 꼬옥 맞잡고 찾았다. 오빠가 잘 그리는 산수화와 정물화를 언니는 네 점, 동생은 두 점을 샀다. 최근엔 인터넷에서도 오빠를 만나고 있다.

춘희씨는 피란생활을 하던 전주 외곽 ‘묵구실’(지금의 전주대 자리)을 떠나는 오빠의 마지막 모습을 산에서 내려다본 게 기억 저편에 아련히 남아 있다. “오빠를 그리는 사무침에 병을 얻어 어머니는 26년 전, 아버지는 15년 전 세상을 버리셨습니다. 생존 사실만 아셨어도 그처럼 한이 맺히지 않았을텐데…. ”

/전주=김창곤기자 cg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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