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산가족을 찾아 주면서도 월북자 가족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에 내 혈육을 찾겠다는 생각을 못 했었어요. ”

83년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진행을 맡아 전국에 이산가족 신드롬을 만들었던 아나운서 이지연(여·53)씨는 17일 북에서 친오빠 이래성(68)씨가 남쪽의 가족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눈물을 흘렸다.

이날 오후 한국적십자사를 찾아와 이산가족 확인 결과서를 작성한 이씨는 “70년대까지 매달 한 번씩 형사들이 찾아와서 감시했기 때문에 이산가족 찾기 방송 때는 티도 내지 못했다”며 “전 민족적 행사에 개인감정을 앞세울 수 없다는 생각을 했지만, 행사 마지막에는 결국 ‘나도 사실은 이산가족’이라고 밝혔다”고 말했다.

오빠 이래성씨는 6·25전쟁 때 전북 이리농고에 다니다가 인민군 의용군에 징집돼 북한으로 갔다. 이후 이씨 가족은 월북자 가족에게 쏠리는 의심의 눈초리를 의식하고 수십 년을 소리없이 살아왔다. 헤어질 당시 3살이었던 이씨는 7살 때 “오빠가 잡혀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갔다가 북을 선택했고, 현재는 일본에서 공부하는 중”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집에서 받았다고 기억했다.

66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86년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오빠가 1남5녀 중 외동아들이어서 마지막까지도 대가 끊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통일을 염원했다고 이씨는 말했다. 남은 가족들은 그래서 부모 묘비에 아들 이름을 새겨놓았다.

하지만 이씨 가족들은 불과 두달 전인 지난 5월 고향인 군산지법에 오빠에 대한 실종자 처리 신고를 했다고 한다.

‘이산가족 방문단’ 명단에서 오빠 이름을 맨 먼저 발견한 바로 위 언니 이점학(62)씨는 “아버지에게 ‘대가 끊기지 않았다’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고 말했다.

“이산가족 찾기 때 느꼈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나와 내 가족의 얘기였거든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을 기념해 진행한 7부작 실향민 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83년에 참았던 울음까지 울어버렸어요. ”

확인서를 내고 이날 분당의 이점학씨의 집에 모인 이씨와 언니들은 “100명 안에 꼭 들어 오빠를 만나봤으면 좋겠다”며 기대의 눈물을 흘렸다.

/정성진기자 sjchung@chosun.com

/임민혁기자 lmhcoo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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