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남북관계가 진전될 것으로 잔뜩 희망을 가졌다가 현실이 그러하지 못한 것에 실망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이 정부의 대북정책 지지기반이 심각하게 약화된 데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앞서가는 말이 상당한 이유가 됐다고 할 수 있다. 김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공개 오찬석상에서 북한이 경의선 복원공사를 재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언급한 것은 그의 대북 조급증이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방증이라고 할 만하다.

그동안 남북문제와 관련한 김 대통령의 말의 성찬은 화려했다. 「철의 실크로드」가 열리고 「북한 특수」가 올 것이며, 김정일의 답방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힌 것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것과 성급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김 대통령이 언급한 북한의 경의선 공사 재개 조짐이란 작년 12월 말부터 북한이 서부전선 북측 공사구간 내의 군대막사를 증축 보수하고 병력도 늘리고 있다는 국방부 보고를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의 움직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우리 실무 당국 간에도 이견이 있어 아직은 좀더 두고 봐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형편이다.

통일부는 공사구간 내의 북한병력 움직임이 활발해졌다고 해서 이것을 곧 경의선 공사 재개목적으로 볼 수 있는 확증은 없다는 입장이다. 실무 부서 간에도 의견이 다르고 그래서 판단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 그것도 자신의 희망을 섞어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신중한 자세라고 할 수 없다.

북한이 4월 말부터 2개월간 평양에서 개최하는 ‘아리랑’ 축전에 남한 사람들을 대거 유치하고, 중국의 월드컵 관광객을 평양과 서울로 연결할 계획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 경의선 공사를 서두를 것이라는 추측을 낳을 수도 있지만 이것도 아직은 두고 볼 일이다.

김 대통령으로서는 연두회견에서 천명한 올해의 남북관계 5대 핵심과제 중의 하나인 경의선 연결이 간절하겠지만 그렇다고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말을 앞세우는 것은 국민들의 기대만 부풀게 할 뿐 아니라, 정작 북한의 실천을 유도하는 데도 유리할 게 없을 것이다. 확실하고 분명한 근거가 있을 때 대통령이 나서도 늦지 않을 것이고 그래야 대통령의 언급은 최종적인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과욕을 부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자꾸만 앞서가는 대통령의 말은 그러한 다짐이 진정으로 내면화된 것이라기보다 그마저도 말의 성찬에 불과한 것 아닌가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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