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도 모르던 동생을 50년 만에 만난다니 꿈인지 생신지…. ”

충남 천안시 이인호(이인호·77)씨는 16일 북한에서 보내온 이산가족 교환방문단 명단에 실린 둘째 동생 용호(용호·68)씨 사진을 쓰다듬으며 “많이 늙었구나”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전쟁이 한창이던 50년 여름 어느날, 충남 아산 탕정면 매곡리 용호씨 집에 불쑥 찾아온 ‘인민군’들은 6남1녀를 일렬로 세우고 쑥덕이더니 키 크고 몸집 좋은 셋째를 가리키며 “따라오라”고 했다.

대전사범학교 2학년이던 18세 용호 소년은 그렇게 의용군에 차출되면서 강산이 다섯 번 바뀌는 세월 동안 가족과 이별해야 했다. 남은 식구들은 백방으로 그를 수소문했지만 죽었는지 살았는지 뜬소문조차 듣지 못했다.

아들이 집을 떠난 다음날부터 평생을 하루같이 정화수(정화수) 떠놓고 무사를 빌던 어머니 홍금임(99)씨는 지난 3월 노환으로 세상을 뜨면서도 “용호야”라고 부르며 눈을 감지 못했다. 막내 아들 선호(선호·60)씨는 “10여년간 노환으로 누워 계시는 어머니를 보며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못 돌아가시나보다’고들 했다”며 “넉달만 먼저 소식이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6남매는 이날 선호씨 부인(59) 생일을 맞아 천안 선호씨 집에 모여 있다가 북으로부터 온 소식을 전해 듣고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홍씨는 그때 헤어진 아들만 빼면 고손자까지 보며 다복하게 노년을 보냈다. 맏형 인호씨는 “어머니는 생전에 온 가족을 모아 놓고 ‘이가 하나 빠졌구나’라는 말씀을 되풀이하시곤 했다”고 말했다. 둘째 봉호(봉호·71)씨는 “의용군이 후퇴 직전 주둔하던 온양국민학교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까까머리에 인민군복 입은 동생 걱정을 했다”고 말했다.

부모는 세상을 떴지만 5남1녀는 서울과 천안, 고향 아산에서 자영업을 하거나 농사지으며 순탄히 살아왔다.

현재 남한의 일가는 첫째 인호씨부터 젖먹이 어린아이까지 모두 97명. 인호씨는 “이제 북쪽의 용호 식구까지 합치면 100명이 넘겠다”며 웃었다.

여동생 선호(선호·62)씨는 “반 백년 동안 북한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고생은 하지 않았는지 너무 궁금하다”며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되는 거냐”고 물었다.

이날 저녁 내내 방문단 명단의 ‘늙은 동생’ 사진을 들여다보던 인호씨는 “용호를 만나면 맨 처음 부모님 산소에 데려가 성묘하고 싶다”며 “그 애도 무엇보다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50년간 못했던 효도를 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이동혁기자 d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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