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베트남은 13일(미국시각) 워싱턴에서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25년 만에 역사적인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샬린 바셰프스키 대표와 부 콴 베트남 무역부 장관이 양국간 무역협정에 서명했다”며 “양국은 쓰라린 과거를 떨치고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씨앗을 심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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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이 95년 국교정상화 이후 4년 간에 걸친 협상 끝에 서명한 이번 협정으로 두 나라는 베트남 전쟁 후 완전한 관계 회복이 이루어지게 됐다. 미국과 베트남은 양국 시장을 다른 나라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개방하기로 합의했다. 관세를 내리고, 서로의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며, 투자장벽도 대폭 완화하게 된다. 이에 따라 미국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이 본격 시작되고, 미국 시장에도 베트남제 값싼 상품들이 밀려들 전망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이번 협정은 베트남 경제를 극적으로 개방시킬 것이며, 베트남의 고용을 창출하고 양국간 무역을 증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베트남이 변화하는 세계로 고개를 돌렸다”고 평가하고 “베트남의 무역이 인권과 함께 발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무역협정의 서명으로 양국 관계가 완전히 회복됨으로써 클린턴은 연말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베트남전 이후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미언론들은 보도했다. 베트남전 전쟁영웅으로 미 대선 예선전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매케인 상원의원은 이날 “무역협정 서명은 전쟁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또다른 진전”이라며 “미국보다 베트남에게 더욱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미 지난 4년 동안 지루한 협상을 거듭해온 미· 베트남 무역협정은 작년에 대강의 골격이 합의된 상태였다. 그러나 시장개방에 따른 통제력 상실을 우려한 베트남 공산정권이 막판에 “협상이 불공정하게 이루어졌다”며 서명을 거부했다.

베트남 정부가 이번에 마음을 바꾼 데에는 차기 미국 행정부가 공화당으로 교체될 경우 협상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얼마전 중국이 영구적인 정상교역관계(NTR)를 허용받은 것도 베트남정부를 자극한 요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특히 샬린 바셰프스키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이번에 베트남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지원을 약속한 것도 베트남측을 움직인 배경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베트남 무역협정은 미의회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만, 의회의 동의는 낙관적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개발도상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해온 노조의 표를 의식, 의회의 승인은 11월 대통령 선거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미·베트남간 무역협정 체결로 양국간 경제교류는 미·북한 관계와는 달리 상당히 빠르게 발전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은 이미 지난 80년대말부터 시장경제로의 개혁에 착수했고, 상당수 국민들이 자본주의를 경험한 역사가 있어 시장개방은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협정에 따르면 베트남은 미국의 상품, 서비스, 투자 등에 대한 관세를 다른 국가들 수준으로 대폭 낮추고, 시장개방을 위해 각종 법률과 제도들을 광범위하게 개정해야 한다. 미국의 정보통신, 금융, 에너지 분야 등의 회사들은 벌써부터 인구 8000만의 베트남 시장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반면 미국의 경우도 비록 해마다 갱신하는 절차를 밟지만, 베트남에 정상교역관계(NTR) 지위를 부여, 베트남 상품이 낮은 관세로 미국시장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을 터주게 된다.

/워싱턴=강효상기자 hskang@chosun.com

미국-베트남 교역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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