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남북공동선언의 가장 큰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통일을 20~30년 뒤에 맞기 위한 평화공존, 남북 공동번영의 남북 당국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이 선언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분단 55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한 정상이 각기 자기 국호를 명시하고 직접 서명했다는 점이다.

동서독 통일의 교훈은 졸속의 일면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해로 독일 통일 10년을 넘기며 서독은 동독지역에 10년간 매년 국민총생산의 3%를 집어넣었으나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 해서 작년부터 일방적 지원을 감축했다. 서독 국민들은 통일에 앞서 통일세를 한푼도 부과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던 콜 수상을 거세게 비난했다.

독일 통일은 속칭 ‘흡수통일’이라 하지만 11개주의 독일연방에 동독 5개 주가 가입해온 형식을 취했다.

서독의 경제가 밑바닥을 칠 정도로 동독지방을 크게 지원했으나, 동독민들 중 옛 간부들은 ‘오스탈키아(동독향수병)’에 빠지고 일반시민들도 2등, 3등 국민으로 천대받는다는 불만도 만만치 않다.

만일 한국이 졸속통일을 한다면 연간 GDP의 10% 이상을 쏟아넣어도 북한 동포들은 남한과의 생활수준 격차에 불만을 터뜨릴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은 6월의 정상회담 이전이나 그 후에나 평화공존·공영, 경제협력의 기본에서 흔들림이 없다.

지난 10일 김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범죄예방대회 수상자 등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통일 과열의 부당함을 역설했다.

김 대통령은 “지금 경제적 능력이 없고 국민감정이 받아들일 수 없어 남북의 통일을 바랄 수 없는 만큼,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해 가면서 20~30년 지나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면 통일이 온다”고 ‘통일적 상황’의 선행론을 폈다. 지금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7·4성명형의 감상적 ‘통일’과 남북 자유왕래, 우편교환, 북한경제 자립의 ‘통일적 상황’의 선행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통일이 온다”는 김 대통령의 표현은 ‘적화통일’이나 ‘흡수통일’과 같은 현상타파적 통일이 아니라 자생적 질서로서의 통일을 의미한다. 김 대통령은 북한의 자력갱생을 돕는 것이지 전력 등의 원조로 북한의 남한 의존성을 만들려는 의도도 가지고 있지 않다. 김 대통령은 중국·베트남형의 시장제 사회주의의 개혁·개방을 북한이 할 수 있도록 군사적 긴장완화와 경제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다. 6·15선언은 통일이 아닌 북한의 자력갱생을 돕겠다는 약속의 악수이다.

중국은 1962년 덩샤오핑(등소평)이 주자파(주자파)로 몰려 곤욕을 치른 이후 78년 정권을 장악하여 81년 개혁·개방의 ‘덩샤오핑 헌법’을 만드는 데까지 약 20년이 걸렸다.

전쟁 승리에만 도취해 보트피플의 참극을 연출했던 베트남이 패망한 남부 월남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복원시킨 것이 1988년의 도이모이(쇄신)였다. 개방 1년 만에 베트남은 150만t의 쌀을 수출할 수 있었다. 88년에서 97년까지 9년간 고도성장을 거듭하여 무려 57.8배의 경제번영을 이룩했다.

북한지도층은 이제 중국과 베트남의 교과서 앞에 섰다. “역사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교훈을 배우지 않는 자를 벌한다. ”(크리체브시키)

/신일철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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