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치 군사 등 일체의 사업 중에서 경제가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

6월 28일부터 30일까지 정주영(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과 함께 방북했던 현대아산 고위관계자는 “북한이 변하고 있음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김 국방위원장이 정 전 명예회장을 4시간30분이나 만난 것이 대표적 예라는 것. 1998·1999년의 환담은 각각 2시간 남짓이었다.

정상회담 이후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북한 신문과 방송은 남한 당국에 대한 원색적 비방을 없앴다. ‘괴뢰 도당’ ‘반(반)통일 파쇼 집단’ 등 종래의 용어는 찾을 수 없다.

한 당국자는 “조성태(조성태) 국방장관의 발언을 문제삼은 방송에서도 과거의 ‘놈’이란 원색적 용어 대신 ‘국방장관’이란 직책을 불렀다”고 지적했다.

노동신문의 ‘남조선·통일면’(5면) 편집도 달라졌다. 대남 비방·선전선동 기사가 없고 북한의 경제·사회 관련 기사로 대체되고 있다. 남한 내 의약분업과 금융노조파업 등도 남한 언론보도를 인용, 사실만 보도했다. ‘폭압 경찰’ 운운하며 노조의 반정부 투쟁을 부추겼던 과거와는 확실히 다르다.

‘6·25 북침’ 사설도 쓰지 않았고, 6월 25일부터 7월 27일까지 한 달간 계속되던 ‘반미(반미)투쟁 월간’ 행사도 갖지 않았다. 휴전선 일대의 대남 확성기 방송도 중단했고, ‘주한미군 철수’ ‘미제 타도’ 등의 호전적 구호 간판도 아예 없애거나 ‘동족상쟁 반대’ 등으로 바꿨다.

박재규(박재규)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꽃게잡이 어선들이 북방한계선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북측 해역으로 넘어간 우리 어선을 수리해 다음 날 돌려보낸 것도 중요한 변화”라고 지적했다.

정상회담은 북한 외교에도 변화를 감지케 한다. 북한은 12일 필리핀과 수교한 데 이어, 캐나다, 쿠웨이트 등과도 수교협상을 벌이고 있다. 백남순(백남순) 외무상이 이달 하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최초로 참석, 서방국가 외무장관과 회담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

고유환(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모순적인 것이 보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김정일 위원장은 큰 방향을 대외 개방으로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6·15선언 한달 북한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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