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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추억] 꽃같은 아이들이 무슨 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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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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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북한에는 의사담당구역제라고 해 의사 한 사람이 5~6개의 인민반(200~300명)을 맡아 주치의처럼 건강을 관리하는데 맡은 인민반에서 누가 아프다고 하면 의사가 직접 가주게 돼 있다.

환자가 발생했다고 해 달려 가보면 푸짐하게 고기를 구워 놓고 먹어라 마셔라 하는 사람도 있다.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면 『선생님을 초대하고 싶어서 왕진오시라고 했습니다』라고 하지만 사실은 며칠이라도 집에서 쉬고 싶은데 결근을 하자면 진단서가 없으면 안 되니 그러는 것이었다. 6일까지는 담당 의사가 개별적으로 진단서를 발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위 진단이 발각되면 비판과 처벌을 면치 못하니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훨씬 더 자주 목격하는 것은 처연하고 애처로운 삶의 풍경이었다. 96년 늦가을 배가 아프고 혈변을 보는 급한 환자가 발생해 왕진을 갔는데, 이 젊은 아주머니는 한사코 진단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기사정 물사정으로 오랫동안 목욕을 할 수 없어 맨살을 보이기가 수치스러웠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나중에 거리에서 마주쳐도 얼굴을 피하곤 하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이들의 수난은 더욱 말할 것이 없다. 내가 맡았던 담당 인민반 한 가정에 남편은 공사장 사고로 죽고, 아내도 곧 기아와 병으로 11살난 딸과 7살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 사망진단서 발급문제로 방문을 하게 됐는데, 딸아이가 불도 없이 차디찬 방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방안에는 물건이라고는 이불 한 채와 식기 몇 개가 전부였다. 『울지 말아라. 이름이 뭐니?』 『영옥이...』『점심은 먹었니?』 『엊저녁부터 아무 것도 못 먹었어요.』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니?』『옥수수가루 한 그릇 정도 있어요.』『그럼 죽이라도 끓여서 시장기부터 속이고 보자꾸나.』 아이는 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그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내일 어머니 산소에 가려고 하는데 옥수수빵이라도 한두 개 만들어 가야 한다고 해서 나도 그만 같이 안고 울고 말았다. 아이가 불쌍하고 기특하기도 해 같이 무덤까지 가 주었다. 그 아이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96년 5월경 구급 왕진으로 강변 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10살쯤 돼 보이는 남자 아이가 7살쯤 돼 보이는 남동생의 손목을 꼭 붙잡고 따사로운 햇볕이 드는 경사지에 나란히 누워있었다. 뼈만 앙상한 창백한 얼굴에 엄마 아빠를 그리워하는지 흘러내린 눈물 위에는 밉살스러운 파리떼들이 수없이 붙어 있었다. 손을 올려 파리를 쫓을 기력조차 없이 마지막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광경을 보는 마음이 비통했고, 미래가 심히 걱정되었다. 구급 대책으로 동생은 소생되었으나 형은 이미 숨진 뒤였다. 이 꽃같은 아이들이 무슨 죄로 쓰러져야 하는지 마음이 무거워지기만 했다.

/전 낙원기계연합기업소(평북 신의주) 병원 내과의, 97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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