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만드는 일에 35년간 종사해오면서 많은 질책과 항의와 비판을 받았지만 이번처럼 분노하다 못해 참담하고 비참하게 느낀 적은 없었다. 평양에서 남북정상이 만나던 지난 6월 13일.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이런 글이 올랐다.

‘조선 기자들의 암 발생 기쁜 소식. 하늘이 그런 나쁜 놈들을 그냥 넘어갈 리는 없다. 말기(말기)를 거쳐서 신속하게 사망에 이르기를 바란다. 관(관)도 쓰지 말고 파묻어라. 아니면 들개에게 주든가’ 또 ‘암세포야 힘내라. 앞으로 너희들(암세포)에게 온갖 고통이 따를지라도 흔들리지 말고 버티거라’는 글도 올랐다.

불행히도 조선일보에는 당시 3명의 기자가 암에 걸려 투병 중이었다. 모든 기자가 이들의 처절한 투병을 응원하며 이들이 다시 일어나 편집국에 복귀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다.

그런 시점에 어떻게 그런 저주의 글이 비록 인터넷이지만 오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글이 근 한 달간 지워지지 않고 저장돼 있을 수 있는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다. 그 중 한 기자는 인터넷의 저주가 있은 지 열흘도 안돼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지금으로서는 투병 중인 2명의 기자가 그 저주에 걸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조선일보라고 비판받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가 보다 책임있는 언론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와 견해가 다른 사람, 또는 우리가 오류를 범해 피해를 본 측들의 간단없는 비판과 항의와 반론(반론)에 더욱 겸허해야 한다고 믿는다. 또 인터넷 접근의 한계성과 동호적(동호적) 성격을 감안할 때 거기에 실린 글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활자매체의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갖고 있다.

그러나 ‘암 발생 기쁜 소식’에 딸린 문구는 특정매체에 대한 비판을 넘어 인간세상의 근본을 파괴하는 것이다. 아무리 하찮은 인간이고 아무리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신문이라고 해도 욕해서 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욕이 있다. 더구나 이 기자들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 여기다가 ‘신속하게 사망에 이르기를’ 재촉하는 자들은 과연 인간인가 악귀인가.

조선일보가 과연 무슨 대역죄라도 저질렀나? 아니면 인간파괴의 반인륜범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조선일보를 싫어하는, 아니 미워하는 측은 결국 논리로 대응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드러낸 것밖에 되지 않는다.

‘조선일보 사람을 때려잡는 수법’ ‘조선의 핵심을 파괴하라’ ‘사고방식이 잘못되어 있는 집단’ ‘조금씩 너의 침몰을 지켜 보겠다’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이들의 조선일보를 보는 눈은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며 감정 중에서도 증오에 가깝다.

우리는 안다. 결국 조선일보의 논조가 자기들 마음에 안 들어서다. 특히 우리의 대북논조가 그 바탕에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의 저주에서 최근 조선일보를 폭파하겠다는 북한 성명과 같은 맥을 느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런 저주의 욕설들은 요즘 부쩍 활개를 치고 있다. 그래도 한 나라를 다스린다는 체제의 대변방송이 남쪽의 정치지도자에게 ‘놈’자에 온갖 상스러운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어느 노조의 농성장에 가면 다시 옮길 수 없는 인격모욕과 인간관계 파괴의 욕설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북한의 성명들은 내놓고 하는 욕이지만 남쪽의 저주와 욕설은 비겁하게도 익명 뒤에 숨어 있다. 그렇게 자기의 논리에 자신이 있고 자기의 증오를 합리화할 수 있다면 왜 당당히 나서서 자기 신분을 밝히고 하지 못하는가.

일부 논자들은 네티즌들의 ‘언론의 자유’를 들먹인다. 조선일보가 대북관계에서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고 나설 때는 언론의 자유보다 언론의 책임이 더 중요하다고 궤변하던 사람들이 있다.

언론의 자유와 책임은 신문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그런 개념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 윤리라는 것을 배운다. 아무래도 지금 판은 윤리고 자유고 책임이고 아랑곳없이 한반도의 마지막 이념형 사생결단(사생결단)의 장(장)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 같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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